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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366
한자 古墳
영어공식명칭 Ancient Tomb
영어의미역 Ancient Tomb
영어공식명칭 Ancient Tomb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고대/삼국시대
집필자 조근우

[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무덤.

[개설]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전라남도 서부 지역은 주구 토광묘, 대형의 전용옹관, 영산강식 석실, 전방후원형고분 등 다양한 묘제와 거대한 봉분(封墳)을 가진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순천 지역을 포함한 전라남도 동부 지역은 뚜렷한 봉분을 가진 것은 거의 없고, 고분의 양상도 다양하지 않다. 전라남도 동부 지역 가운데 순천 지역은 점이지대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백제와 가야 등의 무덤 양식이 혼재된 특이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

순천 지역에 분포하는 고분 가운데 발굴조사를 통해 매장 주체가 밝혀진 숫자는 일부에 불과하여 정확한 문화상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순천 운평리 고분군에서는 가야와 밀접하게 관련된 무덤과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주목을 받았다.

[토광묘]

전라남도 서부 지역에서는 3세기 말 이후에는 다장(多葬)이 되면서 옹관(甕棺)과 목관(木棺)이 함께 같은 봉분에 매장되면서 고분으로 발전된다. 또 4세기대의 전용옹관은 영산강 유역에 널리 분포하는 양상을 보여 토광묘보다는 옹관묘가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순천 지역의 4세기대 매장 주체는 토광[목관]묘이다. 승주 요곡리 유적에서 확인된 토광묘의 경우 소규모에 속하지만, 출토유물로 보아 재지세력에 의해 축조된 무덤으로 판단된다. 이들 토광묘는 구릉 말단부에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무덤의 형태가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렵다. 인접한 여수 죽림리 유적에서는 4~5세기대 전반에 해당하는 가야계 토광묘가 밀집되어 확인되기도 하였다.

5세기대에 접어들면 순천 지역에 목곽묘가 채용된다. 순천 운평리 고분에서는 재지세력에 의해 축조된 4~5세기대의 목곽묘 15기가 확인되었다. 순천 지역에서 확인된 목곽묘 가운데 5호 목곽묘는 단경호[목짧은항아리]와 많은 철기류가 부장되어 대가야 문물이 유입되기 이전 단계의 재지 수장급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석실묘]

영산강을 중심으로 하는 전라남도 서부 지역의 석실[석곽]묘는 다양한 구조가 확인되며, 축조양상에 따라 영산강식, 백제식, 남해안식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한, 석실의 구조뿐만 아니라 봉분의 형태도 방형, 제형, 원형, 원대형, 장고형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순천 지역에서 확인된 석실묘의 봉분 형태는 모두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단순하다. 또 봉분을 가진 고분은 극히 드물며, 석실만 확인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석실묘는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백제 석실묘이다. 이는 주로 백제 산성이 축성된 이후 조영된 것으로 백제 산성이 있는 지역과 주변 지역에 분포한다. 따라서 백제 석실묘는 순천 지역이 완전하게 백제의 영향력에 놓인 후에 축조된 것이다. 석실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사비기 이후에 해당하는 늦은 시기의 고분으로 판단된다. 석실의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거나 남-북 방향이며, 죽내리성산리, 송산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이들 석실묘는 모두 횡구식(橫口式)[앞트기식]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둘째는 가야계 석곽묘이다. 가야계 석곽묘는 등고선과 나란한 장축방향을 하고 있어 백제 석실묘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석곽의 규모는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된다. 축조방법을 보면 큰 규모의 석곽은 장단벽을 모두 눕혀 쌓아 만들고, 시기적으로 늦은 석곽은 최하단의 벽석을 세운 후 상단은 눕혀 쌓은 구조로 변한다. 순천 지역에서는 운평리·죽내리·용당동 망북·왕지동·덕암동 고분, 승주 쌍암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운평리 고분은 봉토분 5기에서 25기의 석곽묘가 조사되었으며, 마구(馬具)·귀걸이·통형기대(筒形器臺)[그릇받침대] 등 대가야계 유물과 남해안식 석실의 형태, 그리고 신라계의 마구·귀걸이·토기 등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여기에서 출토된 대가야계 위세품은 순천 지역과 대가야와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순천 죽내리 성암고분에서는 구조와 출토유물 등이 가야계와 백제계가 혼재되어 있어, 가야계 석곽묘에서 백제계 석곽묘로 이행되어 가는 변화양상을 보여준다. 순천 죽내리 성암고분은 인접해 있는 순천 성암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석실 바닥면에 순천 성암산성에서 출토되는 기와를 간 것도 확인되었다. 또한, 왕지동 고분에서는 전형적인 백제 토기의 특징으로 알려진 새발무늬토기[鳥足文土器]가 가야계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순천 지역의 고분에서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는 백제 후기의 무덤에는 유물을 거의 부장하지 않는 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가야계 고분에서는 다양한 토기류와 금속류가 출토되어 백제 고분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출토 토기류는 가야계 토기와 백제 토기로 구분된다. 가야계 토기는 다시 소가야계와 대가야계 토기로 나눌 수 있다. 소가야계 토기는 덕암동·용당동·죽내리·운평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수평구연호(水平口緣壺), 장경소호(長頸小壺), 대부직구호(臺附直口壺), 고배[굽다리접시], 파배(把杯)[손잡이 달린 술잔], 기대[그릇받침대] 등이 있다. 대가야계 토기는 운평리·성암·덕암동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개장경호[뚜껑목항아리], 개, 무개장경호, 기대, 고배 등이 있다.

백제 토기는 병, 호, 개배 등 비교적 단순한 기종만 출토된다. 한편 관못은 백제 고분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이 있다. 순천 운평리 고분에서는 가야계 토기 이외에도 귀걸이, 통형기대 등의 위세품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당시 순천 지역의 지배세력이 묻혔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순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은 크게 재지계, 가야계, 백제계로 구분된다. 이는 백제와 가야의 점이지대에 있는 지리적 환경에서 나타난 양상으로 삼국시대의 순천 지역은 매우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순천 운평리 고분을 통해서 대가야와 순천 지역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고, 6세기 전반 백제가 순천 지역에 산성을 축조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백제 고분이 확인되는 특징을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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