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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10
한자 崔元佑
영어공식명칭 Choi Won-u
영어음역 Choi Won-u
영어공식명칭 Choi Won-u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26년 - 최원우 과거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47년 - 최원우 서해도 파견
활동 시기/일시 1365년 - 최원우 승평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365년 - 최원우 감찰집의 역임
부임|활동지 최원우 부임지 - 전라남도 순천시
성격 문관
성별
본관 미상
대표 관직 안렴존무사|감찰집의|감무|승평부사

[정의]

고려 후기 순천 지역에 승평부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최원우(崔元祐)의 가계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활동 사항]

최원우는 1326년(충숙왕 13)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1347년(충목왕 3) 박광후(朴光厚)와 같이 서해도(西海道)에 파견되어 민전(民田)을 조사하고 안렴존무사(按廉存撫使)가 되었다.

최원우는 1365년(공민왕 14) 감찰집의(監察執義)를 역임하였는데, 감찰사(監察司)가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의 가노(家奴)를 가두는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시중이었던 유탁(柳濯)[1311~1371]이 감찰집의였던 최원우에게 석방할 것을 청하였다. 최원우가 이를 허락하였으나 다른 노비를 하옥시키자 유탁이 노하여 공민왕에게 조회하지 않았다. 이에 최원우는 재추(宰樞)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어, 이듬해인 1366년 정해(貞海) 감무(監務)로 좌천되었다.

최원우는 1365년(공민왕 14) 승평부사로 있다가 감찰집의가 되어 승평 지방을 떠나면서 오랜 세월 속에 쓰러진 전임 부사 최석(崔碩)의 팔마비를 세우고 시를 지었다. 『강남악부(江南樂府)』에 의하면 최석은 승평부사가 되어 은혜로운 일을 많이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학문과 저술]

최원우가 승평부사일 당시 전임 부사 최석의 팔마비를 다시 세우고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순천팔마비(題順天八馬碑)」

내왕승평절물이(來往昇平節物移)[승평을 오고 가는 태수가 많았으니]

송영다괴탈민시(送迎多愧奪民時)[보내고 맞이함에 농민의 시간을 빼앗음이 부끄럽구나]

막언무덕감전후(莫言無德堪傳後)[덕 없는 나와 같은 사람을 후세에 전하려 하지 말고]

부기최군팔마비(復起崔君八馬碑)[최석의 팔마비나 다시 일으켜 세우소]

순천팔마비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에 왜구에 의해 또 허물어지니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승평부사로 부임한 1617년(광해군 9)에 다시 세우고 비문에는 ‘팔마비’ 세 글자만 세기고 자신의 이름은 넣지 않았다. 순천팔마비 비석은 지금도 옛 승주군 청사[현 전라남도 순천시 영동]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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