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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12
한자 許鎰
영어공식명칭 Heo Il
영어음역 Heo Il
영어공식명칭 Heo Il
이칭/별칭 여중(汝重),일심재(一心齋)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9년연표보기 - 허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5년 - 허일 무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93년연표보기 - 허일 사망
출생지 허일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사당|배향지 충열사 - 전라남도 순천시 순광로 119-16[조례동 150]지도보기
성격 무관
성별
본관 양천
대표 관직 훈련원주부|사헌부감찰|삼포수방사 겸 웅천현감

[정의]

조선 전기 순천 출신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에 참전한 무관.

[가계]

허일(許鎰)[1549~1593]의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자는 여중(汝重)이며, 호는 일심재(一心齋)이다. 할아버지는 허형(許亨)[1489~1564]이며 아버지는 참판을 역임한 허혼(許渾)이다. 어머니는 옥천조씨이다. 부인은 고령박씨와 광산김씨이다.

[활동 사항]

허일은 1549년(명종 4)에 태어났고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 내금위, 훈련원주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에는 웅천현감으로 재임 중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포수방사 겸 웅천현감(三浦守防使兼雄川縣監)으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을 따라 종군하여 동래(東萊), 부산(釜山), 남해(南海) 등지의 전투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때 다섯 아들과 함께 진주(晉州)로 가서 최경회(崔慶會)[1532~1593]와 합세하여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적군에 대항하던 허일은 적의 숫자에 밀려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뒤이어 아들 허증(許增), 허은(許垠), 허탄(許坦) 등도 아버지 허일을 따라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셋째 아들 재헌(載軒) 허곤(許坤)은 한산도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허일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훈으로 녹훈(錄勳)되고 참의를 추증 받았다. 숙종 때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또한 셋째 아들 허곤, 육촌 동생 허경(許磬)과 함께 충열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충열사는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현재의 전라남도 순천시 순광로 119-16[조례동 150]에 복설(復設)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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