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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21
한자 璽篈
영어공식명칭 Sae Bong
영어음역 Sae Bong
영어공식명칭 Sae Bong
이칭/별칭 상월(霜月),혼원(混元),평진대종사(平眞大宗師)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새봉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697년 - 새봉 선암사 극준장로에게 출가
출가|서품 시기/일시 1701년 - 새봉 세진 문신에게 구족계 받음
활동 시기/일시 1748년 - 새봉 선교도총섭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50년 - 새봉 밀양 표충원장 겸 국일도대선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767년 10월연표보기 - 새봉 사망
출생지 새봉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활동지 순천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선교도총섭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출신으로 선암사 화엄대회의 설주가 되었던 승려.

[활동 사항]

새봉(璽篈)[1687~1767]은 순천 출신으로 18세기 선교도총섭을 역임했던 고승이다. 속성은 손씨(孫氏), 자는 혼원(混元), 법호는 상월(霜月)이다. 새봉은 11세 때인 1697년(숙종 23)에 선암사의 극준(極俊) 장로(長老)에게 출가하고, 15세 때인 1701년에 세진(洗塵) 문신(文信)에게 구족계(具足戒)[불교 교단의 승려 중 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를 받았다. 18세 때인 1704년에 설암(雪巖) 추붕(秋鵬)[1651~1706]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이후 벽허(碧虛)·남악(南岳)·환성(喚惺)·연화(蓮華) 등의 고승들을 찾아 심인(心印)을 얻었다.

새봉은 1713년(숙종 39)에 다시 선암사로 돌아와 강설하였는데, 사방에서 배우러 오는 학인들로 가득 찼다. 1715년 무용(無用) 수연(秀演)[1651~1719]을 찾아가 인정을 받고 설암 추봉에게 인가받으니 청허계(淸虛系) 6세 적전(嫡傳)이 되었다. 1748년(영조 24)에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임명되어 전국 승려를 규정(糾正)하였고, 1750년에는 밀양 표충원장(表忠院長) 겸 국일도대선사(國一都大禪師)에 임명되었다.

새봉은 1754년(영조 30)에는 선암사에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열었는데, 이때 모인 사람이 12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당시 대회록에는 각 전각별(殿閣別) 참여 인원을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상실(上室)에서 종사(宗師) 19인, 학인(學人) 56인, 어산(魚山) 3인, 동자(童子) 16인, 지장전(地藏殿)에서 종사 24인, 학인 56인, 어산 2인, 동자 9인, 선당(禪堂)에서 종사 24인, 학인 93인, 어산 1인, 동자 7인, 승당(僧堂)에서 종사 16인, 학인 60인, 어산1인, 동자 15인, 동상실(東上室)에서 종사 12인, 학인 49인, 어산 1인, 동자 2인, 명경당(明鏡堂)에서 종사 33인, 학인 78인, 어산 7인, 동자 18인, 관음전(觀音殿)에서 종사 23인, 학인 180인, 어산 2인, 동자 5인, 칠전(七殿)에서 종사 7인, 수좌 217인, 천불전(千佛殿) 무우당(無憂堂)에서 어산 50인, 독락당(獨樂堂)에서 우바이 150인, 배면당에서 비구니 44인이 참여했다고 한다.

화엄대회는 1754년 3월 16일에 시작하여 4월 3일에 마쳤는데, 다섯 가지 주제로 강의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화엄경(華嚴經)』,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을 강설하고, 두 번째는 『화엄경』, 「십지품(十地品)」, 세 번째는 『선문염송(禪門拈頌)』, 네 번째는 『법화경(法華經)』, 다섯 번째는 『금강경(金剛經)』을 강의했다. 각 강설마다 대중을 대표하는 당기(當機)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화일(華日) 현간(玄侃), 두 번째는 연담(蓮潭) 유일(有一)[1720~1799], 세 번째는 용담(龍潭) 조관(慥冠)[1700~1762], 네 번째는 용암(龍巖) 증숙(增肅), 다섯 번째는 두월(斗月) 청안(晴岸)이 맡았다.

새봉은 1767년 10월에 81세의 나이로 “물은 흘러 바다로 가지만 달은 떨어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水流元去海 月落不離天].”라는 임종게(臨終偈)[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새봉의 제자들은 스승의 유고를 모아 1768년(영조 44)에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을 간행하였다. 서문은 신경준(申景濬)[1712~1781]이 썼다. 한시 84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주로 당시 승려들에게 주었던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다.

[상훈과 추모]

새봉 입적 후 제자들은 평소 실덕(實德)을 진실로 실행하였다는 의미의 ‘평진대종사(平眞大宗師)’라는 호를 더하고 다비(茶毘)하였다. 문인 탁준(卓濬)이 상월대사(霜月大師) 새봉의 유골을 받들어 묘향산에서 초제(醮祭)를 지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유골 안에서 3과의 사리가 나타났다. 이에 하나는 영변 오도산(悟道山)에, 나머지 둘은 순천 선암사와 해남 대흥사에 각각 나누어 승탑을 세워 봉안하였다. 이후 상월대사의 문도들은 선암사와 대둔사에 탑비를 세웠다.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진영에는 18세기 말 선암사를 중창했던 해붕(海鵬) 전령(展翎)[?~1826]의 영찬(影讚)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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