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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25
한자 元奇
영어공식명칭 Won Gi
영어음역 Won Gi
영어공식명칭 Won Gi
이칭/별칭 경운(擎雲),석옹(石翁),김석옹(金石翁)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2년연표보기 - 원기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58년 - 원기 구례 연곡사에서 환월대사에게 출가
활동 시기/일시 1917년 - 원기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 교정 추대
몰년 시기/일시 1936년 11월 11일연표보기 - 원기 사망
출생지 원기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학교|수학지 조계사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수송동 44]
활동지 순천 선암사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대강백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 대승암 강원에서 강의했던 승려.

[활동 사항]

원기(元奇)[1852~1936]는 경상남도 웅천(熊川)[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왕근(金王勤)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이며, 법호는 경운(擎雲) 또는 석옹(石翁)이다. 원기는 17세 때인 1858년(철종 9)에 구례의 연곡사(鷰谷寺)에서 환월대사(幻月大師)[1819~1881]에게 출가하였으며, 사미계(沙彌戒)[사미가 지켜야 할 열 가지 계율]는 승려 해룡(海龍)에게 받았고 구족계(具足戒)[불교 교단의 승려가 받는 계율로서 비국 250계와 비구니 348계]는 선암사에서 승려 화산(華山)에게 받았다. 경운대사(擎雲大師) 원기선암사 대승암[남암] 강원(講院)[불가의 경전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도량]에서 경붕(景鵬) 익운(益運)[1836~1915]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881년(고종 18) 2월 9일 스승으로부터 강학을 물려받아 강맥을 이었고, 1898년 금봉(錦峰) 병연(秉演)에게 강학을 물려줄 때까지 후학을 가르쳤다.

19세기 후반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서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자유롭게 되자 1908년 3월 전국 각 도의 사찰대표 52인이 서울의 원흥사에 모여 해인사 이회광(李晦光)[1862~1933]을 대종정(大宗正)으로 추대하고 원종(圓宗)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이때 원기도 ‘김석옹(金石翁)’이라는 이름으로 서무부장이 되어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런데 1910년 일제로부터 국권이 침탈되었는데도 원종의 종정 이회광은 일본 조동종과 연합하려고 하였다. 이에 반발한 승려들이 1911년 1월 순천 송광사에서 회합하여 임제종(臨濟宗)을 설립하였는데, 이때 원기가 관장(管長)으로 추대되었다. 원기는 1913년 순천 지역의 환산정(喚山亭)을 매입하여 포교당을 설립하는 등 포교 사업에 힘을 기울였는데, 이때 왕생백련결사를 맺어 운옹 이병휘, 남파 김효찬(金孝燦) 등 순천 지역의 여러 지식인과 교류했다. 1915년부터 7년 동안 서울의 각황사[현 조계사]에 머물며 포교 활동을 하였다. 1917년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朝鮮佛敎禪敎兩宗敎務院)이 창립되었을 때는 최고직인 교정(敎正)에 추대되었다.

원기는 근대의 대표적인 사경승(寫經僧)이기도 했다. 29세가 되던 1880년(고종 17)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으로 양산의 통도사에서 『법화경(法華經)』을 금자(金字)로 사경하여 3개월 만에 완성하였다. 그리고 1900년 4월부터는 선암사 비로암에서 『화엄경(華嚴經)』을 사경하여 6년 만에 완성하였는데, 이때 경전의 한 행을 마칠 때마다 한 번 절하고 한 글자를 필사할 때마다 부처님을 호념(護念)하면서 사경하였다고 한다. 원기는 1936년 11월 11일 선암사 대승암에서 85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된 경운대사의 진영에는 김효찬, 이건창(李建昌)[1852~1898], 윤종균(尹鐘均)[1861~1941]의 영찬(影讚)이 실려 있다. 김효찬은 “조계산에서 강의한 지 오십 년이요 각황사의 최고 어른이시다. 누가 알았겠는가 한 방울 연꽃 비로 장안의 모든 집 먼지를 다 씻어 낼 줄을[講法曹溪五十年 覺皇寺裏上頭人 誰知一滴蓮花雨 浥盡長安萬戶塵].”이라고 하였다.

[평가]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은 경운대사를 평가하길 “조계산경운 스님은 늙어 갈수록 배움이 더욱 부지런하였으니, 경전을 읽고 설하는 것으로도 부족하게 여겨 찬탄하였고, 찬탄하는 것으로도 부족하게 여겨 그 내용을 필사했다. 심지어 『화엄경』 전부를 필사했으니 정밀하고 훌륭하여 보는 사람마다 귀신의 솜씨인가 의심했다. 아! 세상에 경전을 높여 칭송하는 유학자는 찾을 수 있어도 어찌 스님의 성심과 원력에 미칠 수 있겠는가[曹溪擎雲上人 年愈老而學愈勤 誦說之不足而讚歎之 讚歎之不足 而幷鈔其書 至鈔華嚴全部 精好無比見者疑出鬼神 嗚呼 求之世儒號稱尊經而 其誠心願力有能跂此者乎].”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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