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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51
한자 安鏞甲
영어공식명칭 An Yong-gab
영어음역 An Yong-gab
영어공식명칭 An Yong-gab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재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연표보기 - 안용갑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4월 9일연표보기 - 3.1운동 벌교시장 장좌리 만세운동 발발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안용갑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 안용갑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안용갑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안용갑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안용갑 거주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 지도보기
활동지 안용갑 활동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벌교 지역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안용갑(安鏞甲)[1889~1947]은 순천군 동초면 신기리[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안용갑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것을 듣고, 만세 시위에 뜻을 같이했다. 이후 1919년 4월 3일 안용갑전평규(田平奎)[1875~1949] 등과 함께 순천군 동초면 신기리의 김천근(金千根)의 자택에서 행동대로서 이팔사(二八社)를 만들었다. 이팔사의 신조(信條)는, ‘우리들 청년은 국파군망(國破君亡)한 이때를 당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하자.’는 것이었다.

이팔사의 결사대원은 안용갑·전평규·안응섭(安應燮)·박영진(朴榮鎭)·안종귀(安鍾貴)·김창기(金昌基)·강정수(姜正秀)·오영태(吳永泰)·곽인석(郭仁錫)·안규삼(安圭三)[1890~?]·정갑표(丁甲杓)·안규진(安圭晉)[1898~1978]·한철순(韓喆淳)·한흥량(韓興良)·김만득(金萬得)·안백순(安伯淳)·안덕환(安德煥)[1897~1958]·안담환(安潭煥)·안일삼(安日三)·송이수(宋二洙)·오수련(吳水連)·김오현(金五鉉)·임재성(任在成)·안규정(安圭偵)·김천근(金千根)·신용석(申龍石)[1890~1968]·전인채(全仁采)·오일준(吳日俊)·한흥조(韓興祚)·안은규(安銀圭)·안상규(安尙圭)[1890~1973]·오병귀(吳炳貴)·윤점수(尹點洙) 등이었다.

전평규 등 이팔사 계원들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이팔사 모임을 다른 지방에도 흔히 있는 위친계(爲親契)라고 하였다. 후일 법정에서도 위친계라고 진술하였다. 1919년 4월 8일 안용갑 등 이팔사 계원들과 김규석·안진영 등은 한흥조의 자택에 모여 독립의 목적을 수행하고자 보성군 벌교면 벌교리[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시장에서 기회를 보아 조선독립만세를 외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하고, 전원 이에 서명 날인했다.

1919년 4월 9일 안용갑전평규 등과 함께 벌교시장으로 나가 기다리다가 오후 1시 반경에 보성군 벌교면 장좌리(長佐里)[현 보성군 벌교읍 장좌리] 아래 시장으로 모인 다음, 안용갑 등이 앞장서서 ‘대한독립기’라고 쓴 종이를 높이 들어 흔들면서 모인 장꾼들에게 연설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니 다수 장꾼이 호응하였다. 이때 안용갑 등 13명이 일본 군경에 체포되고 여러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안용갑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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