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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851
한자 金芚寺
영어공식명칭 Geumdunsa Temple
영어음역 Geumdunsa Temple
영어공식명칭 Geumdunsa Temple
이칭/별칭 동림사,송림사,동림선원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산 2-2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최초 건립지 동림사|송림사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산2-2
현 소재지 금둔사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산2-2 지도보기
성격 사찰
전화 061-755-3809
홈페이지 금전산 금둔사(http://www.geumdunsa.org)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금둔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자를 알 수 없지만, 금둔사지 출토 유물과 문헌 기록을 통해 창건 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금둔사에는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된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이 있다. 또한, 금둔사지에서 출토된 기와에는 암막새, 수막새, 기면와[도깨비기와], 모서리 기와, 착고(着高)[지붕마루의 적새 밑의 기왓골을 막은 숫기와], 이형기와 등이 있는데, 줄무늬병과 편병(扁甁) 등의 토기가 함께 출토되어 9세기 전반에 사찰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둔사의 옛 이름인 ‘동림사’의 명칭은 징효대사(澄曉大師) 절중(折中)[826~900]의 비문에서 처음 나타난다. 비문에서는 “당주(當州)의 군사(郡吏) 김사윤(金思尹) 등이 찾아와서 선지(禪旨)를 듣고 법문(法門)에 깊이 감명을 받아 분령(芬嶺)에 계시도록 청하고, 군(郡)의 동림(桐林)을 선거(禪居)에 길이 예속시켜 열반(涅槃)할 종신처로 삼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분령’은 통일신라시대 낙안의 옛 지명이므로 동림사가 금둔사의 옛 명칭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금둔사는 9세기 후반 징효대사 절중이 주석하였던 선종 사찰로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금둔사와 관련해서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해무리굽청자의 출토를 통해 고려 전기에는 건재(健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의 자료로는 사찰에서 출토되어 보관 중인 ‘정덕(正德)’이라는 명문의 막새기와가 있는데, 정덕은 명(明)나라 무종(武宗)의 연호로서 1506년(중종 원년)부터 1521년(중종 16)까지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이 시기에 건물의 중창이나 개와(改瓦)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밖의 조선시대 문헌기록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낙안(樂安) 불우조(佛宇條)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낙안군(樂安郡) 사찰조(寺刹條)에 “금둔사(金芚寺)금전산(金錢山)에 있다.”라는 기록을 통해 금둔사가 17세기 후반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와 19세기의 『호남읍지(湖南邑誌)』에는 모두 폐찰(廢刹)로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18세기 후반에 폐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 지허(指墟) 지웅선사(智雄禪師)가 중창 불사를 일으켜 현재 법당, 요사채, 종각, 선원, 산신각 등 건물을 신축하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췄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금둔사의 건물로는 대웅전, 응향각, 태고선원, 설선당, 종각,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경내 위쪽으로 올라가면 통일신라시대 동림선원 터의 발굴지[동림선원지]가 있다.

[관련 문화재]

금둔사의 지정문화재가 2점이 있는데,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945호]과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보물 제946호]이다. 이 밖에 문화재는 1980년 이후 새로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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