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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168
한자 忠武祠-倭城臺
영어공식명칭 Chungmusa Shrine and Waeseongdae(Folktale)
영어음역 Chungmusa Shrine and Waeseongdae(Folktale)
영어공식명칭 Chungmusa Shrine and Waeseongdae(Folktal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9년 - 「충무사와 왜성대」 『순천대박물관지』창간호에 「충무사와 왜성대」로 수록
관련 지명 충무사|왜성대 -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지도보기 지도보기
성격 신이함|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이순신|고니시 유키나가|신성마을 주민|도승
모티프 유형 이순신 장군의 영험함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忠武祠)왜성대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왜성대]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는 충무사(忠武祠), 순천왜성 이른바 왜성대(倭城臺)가 자리잡고 있다. 왜성대는 일본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1597년(선조 30) 9월 2일 축조하기 시작하여 3개월만인 1597년 12월 2일에 완공한 일본군의 방어 요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왜성대에서 1년간 머무르면서 갖은 노략질을 했다.

[채록/수집 상황]

「충무사와 왜성대」는 1999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순천대박물관지』 창간호에 「충무사(忠武祠)와 왜성대(倭城臺)」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구술자, 채록 시기, 채록 장소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2000년 순천시와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순천시의 문화유적』Ⅱ 574~575쪽에 「충무사와 왜성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내용]

정유재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축조한 순천왜성은 일인성(日人城)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신성(新城)’, ‘왜성(倭城)’, ‘왜성대’라고 불렀다. 따라서 신성 인근에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마을을 ‘신성포(新城浦)’라 부르게 됐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0여 년 뒤에 서씨(徐氏), 이씨(李氏), 김씨(金氏) 등 세 사람이 신성포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왜성대 주변에서 말발굽 소리가 진동하고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는가 하면, 군사들의 함성이 그치지 않아 주민들은 무서워서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곳에 와 본 도승(道僧)이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마을 뒤에 이순신 장군의 영당을 지어 모시고 공경하라 일러주었다. 이에 사람들은 돈을 모아 조그마한 사당을 짓고,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초상화를 모시고 장군이 돌아가신 날 전날인 11월 18일을 기해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냈다. 이때부터 왜성의 밤도깨비 소동은 없어졌으며, 마을에서 고기가 많이 잡혀 큰 마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다시 발을 들여놓고 이곳을 찾게 되면서 일본인 수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신성포를 순천 외항으로 개발하려 했으나 사업을 벌이려던 일본인들은 모두 병들거나 사업에 실패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수항을 외항으로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이충무공 영당 위에다 간척지 현장 사무소를 지었는데, 기술자들이 들어오기도 전에 집이 바다로 날아가는 등 재앙이 계속되어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해방 직전인 1944년 이충무공 영당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이후 하루는 이곳 백창환의 아버지 꿈에 장군이 나타나 “내 텃돌을 손대는 자가 있으니 가서 지켜라.”라고 현몽을 했다. 그래서 가서 보니, 주민들이 불탄 영당 주춧돌을 뜯고 있어 꿈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손대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다. 해방 후 즉시 주민들은 그 터에서 다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으며, 1948년 순천, 승주, 광양 등지 주민들이 돈을 모아 충무사(忠武祠)라는 사당을 지었다.

충무사에 관한 영험담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충무사 경내에 들어왔던 매가 날지 못해 잡히고, 곰도 뛰지 못해 잡혔다고 하며, 포구에서 밤에 고기를 훔쳐 달아나던 도둑이 밤새 달린 것이 충무사 주위를 맴돌다가 잡혔다는 일화 등이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일대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영험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구전되고 있다.

[모티프 분석]

「충무사와 왜성대」의 주요 모티프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침략으로부터 순천 사람들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의 영험함이다. 일본군의 말발굽 소리와 함성이 들리고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공간에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을 짓자 좋은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무사는 지금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덕분에 마을에는 도둑이 없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충무사에 치성을 드린 뒤에 사업에 착수한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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