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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와 낙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178
한자 觀音寺-樂安
영어공식명칭 Gwaneumsa Temple and Nagan(Folktale)
영어음역 Gwaneumsa Temple and Nagan(Folktale)
영어공식명칭 Gwaneumsa Temple and Nagan(Folktale)
이칭/별칭 성덕과 관음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 「관음사와 낙안」 『낙안과 낙안읍성』에 「성덕과 관음사」로 수록
성격 사찰연기설화
주요 등장 인물 원량|홍장[진나라 황후]|성공|성덕
모티프 유형 관음사가 만들어지게 된 내력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옛 옥과현, 현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에 있는 성덕산 관음사가 창건된 유래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관음사와 낙안」은 2001년 순천시와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편찬한 『낙안과 낙안읍성』 189~190쪽에 「성덕(聖德)과 관음사(觀音寺)」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설화 서두에 “관음사사적기(觀音寺事蹟記)에 전하기를”이라고 적어 「관음사사적기」의 내용을 인용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내용]

대흥(大興)[현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일대]이라는 고을에는 장님 원량(元良)의 딸인 홍장(洪莊)이 있었다. 홍장의 아버지 원량은 어려서 눈을 잃었고, 부인마저 산고 끝에 세상을 떠나자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젖 동량으로 키웠다. 홍장 또한 성품이 현숙하고 아버지 봉양이 극진하여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어느 날 원량이 홍법사(弘法寺) 화주승 성공(性空)이 시주를 부탁하자, 자신의 딸 홍장을 데리고 가라고 한다. 승려 화주를 따라 홍법사로 가던 홍장은 피로에 지쳐 서쪽 바다를 향해 쉬고 있다가 진(晉) 사신들을 만났다. 그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새 황후를 모시러 왔다고 하면서 싣고 온 보물들을 모두 흥법사로 보내고 홍장을 진나라로 데리고 갔다.

중국에 도착한 홍장은 황후가 되어 살생이나 도둑질 등 문란한 행위를 하지 않는 바른 행위[正業]를 행하기에 힘써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지만, 고국을 잊지 못하였다. 황후는 오십삼불(五十三佛) 등을 만들어 본국에 보내 감로사에 봉안하였다. 세월이 지난 다음 황태자로 하여금 탑을 조성하게 하여 금강사(金剛寺)와 경천사(敬天寺)에 모시게 했다.

그리고 홍장은 원불(願佛)인 관음성상(觀音聖像)을 조성하여 돌배에 실어 백제로 보냈다. 낙안에 사는 성덕(盛德)이라는 아가씨가 불상을 모시라는 보살의 현몽(現夢)을 생각하며 해변에 이르다가 이 배를 발견한다. 성덕이 관음상을 등에 업고 이른 곳에 관음사(觀音寺)가 창건된다. 이곳이 지금의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聖德山) 관음사이다. 관음사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촌가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모두가 성취되는 기적이 이루어졌고, 후세 사람들은 이 산을 성덕 아가씨의 이름을 따서 ‘성덕산’이라 불렀다. 한편 홍장의 아버지 원량은 딸과 이별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홀연히 눈을 떴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관음사와 낙안」의 주요 모티프는 ‘관음사가 만들어지게 된 내력’이다. 홍장의 보시로 만든 관음상이 순천 낙안의 성덕에게 넘어갔고, 성덕이 관음사를 창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음사와 관음보살의 영험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관음사와 낙안」는 한남본 『심청전』과 그 구성이나 내용이 유사하여 『심청전』의 형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관음사와 관련된 사찰연기설화(寺刹緣起說話)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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