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경주정씨는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한다. 지백호는 신라를 구성한 사로(斯盧) 6촌 중의 하나인 자산 진지촌(珍支村)[옛 본피부(本彼部)] 촌장이었다. 고려시대 때 정진후(鄭珍厚)가 문과에 급제하여 병부상서 겸 군기시윤(兵部尙書兼軍器寺尹)을 지내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정진...
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금곡동(金谷洞) 명칭은 일제강점기의 이름이다. 본래 지명은 청수(淸水)마을로 난봉산 계곡의 맑은 물에서 유래한다. 금곡동은 원래 순천군 소안면(蘇安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수리(淸水里)와 장내리 일부를 통합하여 금곡리라 하고 순천면에 편입시켰다. 1931년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승격됨에...
전라남도 순천시 풍덕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예절바른 어린이[예절인],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지식인], 재능을 키우는 어린이[기능인],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체력인]”을 기르는 데 있다. 교훈은 “몸은 튼튼히 마음은 새롭게 행동은 바르게”이다. 순천중앙초등학교는 1937년 4월 30일 순천공립보통학교 부설 승주간이학교로 설립되었다. 194...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강진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오응삼(吳應三)[1864~1909]은 순천군 초천면(草川面) 호산(虎山)[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호동리]에서 살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을 상실한 대한제국은 국가의 상징인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했으며, 얼마 되지 않은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비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일반 국민들도 일본의 제국주...
전라남도 순천시 옥천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사액서원. 옥천서원(玉川書院)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을 모신 사당이었다. 김굉필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일파로 연루되어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다가 1500년 순천에 이배(移配)[귀양살이하는 곳을 다른 곳으로 옮김]되었고 갑자사화 때 사사(賜死...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유교 활동의 전개 과정 및 특징. 순천 지역 유교는 정치적 사화에 의한 유배, 왜적에 대항하는 의병 활동, 아름다운 자연에서 유유자적한 삶 등으로 요약된다. 순천시 옥천동에 가면 옥천(玉川)이라는 맑은 물이 난봉산에서 발원해 옛 순천부읍성 남쪽으로 흐르는 데, 거기에는 조선시대 사림의 도학 정신이 깃들어 있다. 1498...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강진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이기춘(李己春)[1879~1909]은 전라남도 순천군 초천면(草川面) 덕산(德山)[현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두고리 덕산마을]에 거주하였다. 대한제국은 190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집요한 침략정책에 의해 허울만 남은 국가로 전락했다. 망국적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법정동. 저전(楮田) 명칭은 종이 만드는 닥나무밭이 있어 ‘딱밭’·‘닥밭’이라 하던 것을 ‘닥나무 저(楮)’, ‘밭 전(田)’ 자를 써서 ‘저전’이라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저전동에는 구릉 지역에 말이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는 갈마곡[갈마골·다마골]이 있다. 현재 순천여자고등학교 앞 동쪽 들판을 청사들(菁沙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