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007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y
영어의미역 Prehistory
영어공식명칭 Prehisto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근우

[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문화상

[개설]

순천 지역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다. 1965년 샘플(L. L. Sample)이 순천 일대에서 뗀석기[타제석기]를 보고하면서부터 구석기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 이후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물론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활발하게 조사되면서 그 문화상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특히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주암댐 수몰 지역에서 이뤄진 문화유적 학술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조사되어 선사유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

순천 지역은 보성강과 다수의 하천을 포함하고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순천 지역만의 독특한 선사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시대까지 꾸준히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란 최초의 인류가 등장하는 약 450만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를 일컫는데 그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순천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대부분 보성강 유역을 비롯하여 강과 하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입지하고 있다. 특히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순천 월평 유적은 2만여 평에 이르는 대규모 유적으로, 송광천을 중심으로 한 월평 지역은 구석기인들의 터전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순천 지역 구석기시대의 연대와 문화상은 순천 월평 유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슴베찌르개[슴베를 만들어서 창이나 화살 따위에 꽂아서 쓰는 찌르개], 끝날긁개, 부리날석기, 새기개, 세형돌날몸돌 등이 출토되었으며 그 시기는 기원전 2만 년부터 1만 5천 년 전후로 추정된다. 중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확인된 우산리 곡천 유적을 제외하고 모두 후기 구석기 유적에 해당한다. 따라서 적어도 중기 구석기 이후부터 순천 지역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

홍적세는 기후변동이 심하여 해수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동물과 식물의 분포와 이동이 빈번했다. 그러다 약 1만 년 전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기후변화와 생태계가 안정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인류가 처음으로 원시농경과 목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석기시대는 수렵과 채집경제가 주를 이루는 구석기시대와 달리 안정된 정착 생활을 바탕으로, 인류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은 부산 동삼동 패총이며,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여수 송도 패총이 있다. 그러나 순천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토기편만 수습되었거나 일부 집자리만 조사되어 구체적인 문화양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출토된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사선문, 능형집선문, 사격자문[대각선이 대칭을 이루며 연속되어 만들어진 무늬]이 새겨진 토기 등은 신석기시대 말기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또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기원전 1,200년의 연대가 도출되었는데 신석기시대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이다.

순천 지역에서는 발굴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축적된 자료가 드물지만, 인근 지역에서 조사된 양상을 통해 보면 주로 강이나 주변의 산에서 수렵과 채취 활동을 하면서 생활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신석기시대 말기의 유적만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더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크다.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00년 전부터 기원 전후까지를 말하는데, 상한은 자료가 축적되면서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청동기라는 새로운 도구가 출현하지만 주로 지배층만의 소유물로 사용되고, 석기나 목기 등이 계속해서 사용되는 시대이다.

순천 지역의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은 무덤유적인 고인돌과 생활유적인 집자리를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특히 우산리 내우 고인돌 8호와 우산리 내우 고인돌 38호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이 출토되어, 순천 지역의 청동기 문화는 비파형동검 문화를 영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에서는 구멍문 토기[孔列土器], 단사선문 토기(短斜線文土器), 무문 토기(無文土器),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또 무덤인 고인돌에서는 비파형동검, 붉은 간 토기[丹塗磨硏土器], 화살촉[石鏃], 간 돌칼[磨製石劍] 등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비파형동검은 고흥 운대리, 보성 덕치리, 여수 봉계동과 여수 적량동을 비롯한 여수반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매우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 문화이다. 따라서 비파형동검 문화를 영유한 이 지역 일대의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최고 권력자들의 무덤으로 축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순천 지역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대부분 움집이며, 평면 모양은 방형계(方形系)와 원형계(圓形系)로 구분된다. 원형계는 집자리 가운데에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형(松菊里型) 집자리가 주를 이룬다. 집자리는 주로 강과 하천에 인접한 구릉에 입지하며,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 벽구(壁溝), 화덕 자리, 단시설, 기둥 구멍[柱穴] 등이 확인된다. 송국리형 집자리 내부의 타원형 구덩이는 불을 피우거나, 도구를 만든 흔적들이 확인된다. 특히 많은 양의 돌부스러기와 제작과정을 나타내주는 미완성 석기들이 출토되어 집 내부에서 생활도구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는 고인돌[支石墓]과 돌널무덤[石棺墓]이 있다. 보성강을 중심으로 한 순천시 송광면주암면에 가장 많은 수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의 무덤칸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석곽형(石槨形), 석관형(石棺形), 위석형(圍石形), 토광형(土壙形)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깬돌[割石]을 쌓아 만든 석곽형의 무덤칸에서 유물이 주로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 고인돌은 무덤방의 구조나 배치상태 등이 2~3기씩 쌍을 이룬 경우가 많아 혈연적으로 가까운 친족집단(親族集團)의 공동묘역(共同墓域)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의의와 평가]

보성강을 비롯한 강과 하천 주변에서 다수의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어 순천 지역의 선사문화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기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된 우산리 곡천 유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들만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에는 내륙에 해당하는 순천 지역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확인된 유적의 숫자가 많지 않다. 조개무지[貝塚]는 없고 모두 집자리 유적만 확인되었다. 다른 지역의 예로 보아 강 주변에서 수렵과 어로, 채집생활을 통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신석기시대 말기에 해당하는 유적들만 확인되었으나 추후 조사를 통해 더 이른 시기의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순천 지역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는 구멍문 토기, 단사선문 토기 등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와 달리 집자리 안에 화덕 시설을 마련하고 집 내부에서 음식물을 조리하면서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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