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03
한자 鄭承復
영어공식명칭 Jeong Seung-bok
영어음역 Jeong Seung-bok
영어공식명칭 Jeong Seung-bok
이칭/별칭 경윤(景胤),옥계(玉溪),장계거사(長溪居士)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0년연표보기 - 정승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44년 - 정승복 별시 무과 장원급제
활동 시기/일시 1546년 - 정승복 중시 무과 장원급제
활동 시기/일시 1552년 - 정승복 옥구현감 역임
몰년 시기/일시 1580년연표보기 - 정승복 사망
출생지 정승복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사당|배향지 옥계서원 - 전라남도 순천시 명말2길 20[연향동 1023-3]지도보기
성격 무관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옥구현감|어란진만호|함흥판관

[정의]

조선 전기 순천 출신의 무관.

[가계]

정승복(鄭承復)[1520~1580]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경윤(景胤)이며, 호는 옥계(玉溪)이다. 순천 출신으로 계림군(鷄林君) 정지년(鄭知年)[1395~1462]의 현손(玄孫)이고 아버지는 돈용교위(敦勇校尉) 정내(鄭鼐)[1491~1548]이고, 어머니는 훈련원습독(訓鍊院習讀) 왕침(王琛)의 딸이다.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新]) 안수금(安秀嶔)과 연안김씨(延安金氏) 김엽(金燁)의 딸이다.

[활동 사항]

정승복은 1544년(중종 39) 별시(別試) 무과에서 을과 장원급제를 하였다. 1546년(명종 1) 중시(重試) 무과에서 장원급제하여 무명을 떨쳤다. 1552년(명종 7) 옥구현감(沃溝縣監)을 역임하였다. 정승복이 옥구현감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왜구가 전라도 남부 지역에 침입한 을묘왜변(乙卯倭變)이 일어나자 도원수 이준경(李浚慶)[1499~1572]을 보좌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1559년(명종 14) 기미왜변(己未倭變) 당시에는 어란진만호(於蘭鎭萬戶)로 참전하여 추자도(楸子島)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왜선 1척을 포획하여, 감사 박충원(朴忠元)[1507~1581]과 수사 최희효(崔希孝)[1509~1589]가 포계(褒啓)[행실이나 공적이 있어 가자(加資)나 상을 내릴 것을 감사(監司)나 수령, 백성들이 임금에게 아룀]를 올려 웅천현감(熊川縣監)이 되었고, 얼마 안 되어 영덕현령(盈德縣令)에 제수되었고, 또 자리를 옮겨 함흥판관(咸興判官)을 역임했다. 정승복은 말년에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옥천동으로 퇴거하여 스스로 ‘장계거사(長溪居士)’라 칭하고 산수를 벗 삼으며 학문을 논구하였다.

[묘소]

정승복의 묘소는 옥계서원이 위치한 뒷산에 배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정승복은 1801년(순조 1)에 순천 지역 유생들의 상소로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증직되었다. 1812년(순조 12) 가선대부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와 훈련원도정에 가증되었다. 또한, 정지년을 중심으로 정승복정승복의 아들 정사준(鄭思竣)[1553~?]·정사횡(鄭思竑)[1563~1640], 손자 정소빈·정소선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1821년(순조 21) 순천부성의 남쪽 장천리에 옥계서원을 건립하여 배향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된 후 1953년 현재 자리인 순천시 연향동에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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