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04
한자 曺偉
영어공식명칭 Jo Wi
영어음역 Jo Wi
영어공식명칭 Jo Wi
이칭/별칭 태허(太虛),매계(梅溪),문장(文莊)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54년연표보기 - 조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72년 - 조위 생원·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474년 - 조위 식년 문과 병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03년연표보기 - 조위 사망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창녕
대표 관직 도승지|동지중추부사|호조참판|충청도관찰사

[정의]

조선 전기 순천 지역에 유배된 문관.

[가계]

조위(曺偉)[1454~1503]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가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경수(曺敬修), 할아버지는 조심(曺深)이고, 아버지는 울산현령 조계문(曺繼門)이다. 어머니는 유문(柳汶)의 딸이다.

[활동 사항]

조위는 1472년(성종 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1474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후 승문원정자·예문관검열을 역임하였다. 홍문관의 정자·저작·박사·수찬, 사헌부지평·시강원문학·홍문관교리·응교 등을 차례로 거친 뒤, 어머니 봉양을 위해 외직을 청하여 함양군수가 되었다. 이어 의정부검상·사헌부장령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었다가 도승지에 이르고, 호조참판·충청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조위는 1498년(연산군 4)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시고(詩稿)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오랫동안 의주에 유배되었다. 이후 순천 지역으로 옮겨진 뒤, 유배가사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만분가(萬憤歌)」를 지었으며, 순천 지역에서 죽었다.

[학문과 저술]

조위는 박식하고 문장이 위려(偉麗)하여 문하에 많은 문사가 배출되었다. 1495년(연산군 원년)에는 어머니의 묘지명을 친필로 돌에 쓰고 새겼는데, 조위가 찬한 「정부인문화류씨묘지명지석(貞夫人文化柳氏墓誌銘誌石)」은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배 중에도 저술을 계속하였으며 『매계총화(梅溪叢話)』를 정리하다가 죽었다.

조위의 작품으로 「조계문묘비(曺繼門墓碑)」가 있고, 저서로 『매계집(梅溪集)』이 있다. 특히 조위의 가사작품인 「만분가」는 자신의 비분함을 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에서 지은 것으로 마치 굴원이 「이소(離騷)」를 지어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했던 것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연군가적 유배가사의 단초를 이루었으며 훗날 송강의 유배가사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상훈과 추모]

조위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경렴서원(景濂書院)에 제향 되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의 송계서원(松溪書院)에서도 주벽으로 제향하여 추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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