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23
한자 性聰
영어공식명칭 Seong Chong
영어음역 Seong Chong
영어공식명칭 Seong Chong
이칭/별칭 백암(栢庵)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1년연표보기 - 성총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00년연표보기 - 성총 사망
출생지 성총 출생지 - 전라북도 남원시
활동지 순천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지도보기
활동지 쌍계사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운수리 208]
성격 승려
성별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송광사에서 활동했던 승려.

[활동 사항]

성총(性聰)[1631~1700]은 남원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강(李棡)이고 어머니는 하씨(河氏)이며, 법호는 백암(栢庵)이다. 부휴계의 적전(嫡傳)[정통(正統)에서 정통(正統)으로 전함]으로서 징광사에서 다량의 불서를 간행했던 고승이다. 성총은 13세인 1643년(인조 21)에 출가하고 3년 후 비구계(比丘戒)[비구가 받아 지켜야 할 250가지의 계율]를 받았다. 1648년 18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취미(翠微) 수초(守初)[1590~1668]의 문하에서 9년간 수학하였다. 부휴 선수-벽암 각성-취미 수초로 이어지는 부휴계(浮休系)의 법맥을 계승했다. 그 후 순천 송광사, 낙안 징광사, 지리산 쌍계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가장 큰 업적은 다량의 불서(佛書)를 간행한 일이다.

성총은 1681년(숙종 7) 전라도 임자도에 떠내려온 중국 표류선에서 불서를 발견하고 간행 유통함으로써 18세기 이후 불교 강원(講院)[불가의 경전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도량]의 학문적 풍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681년 6월 일본으로 가던 중국 상선이 태풍을 만나 전라도 임자도에 표착(漂着)하였는데, 그 배에는 명나라 말기부터 약 100여 년에 걸쳐 간행된 『가흥대장경(嘉興大藏經)』 수천 권이 실려 있었다. 표류선에 실려 있던 불서 1천여 권과 여러 물품은 나주 관아에서 수습하여 왕실로 보냈지만, 인근 해안가에 흩어져 있던 목함(木函)의 불서들은 근처 승려들이 수습하였다. 당시 영광 불갑사에 있던 성총은 불서의 일부를 수습하여 징광사로 가서 간행하였다. 성총은 1686년부터 1700년까지 징광사와 쌍계사에서 『가흥대장경』의 불서를 비롯하여 강원 교재들을 다량 간행했다.

징광사에서 간행한 불서는 『사경지험기(四經持驗記)』[1686] 4권, 『금강반야경소론찬요간정기회편(金剛般若經疏論纂要刊定記會編)』[1686] 10권, 『정토보서(淨土寶書)』[1686] 1권,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1686] 1권,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1686] 2권,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1686] 1권,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1690] 50권, 『대방광불화엄경소초(大方廣佛華嚴經疏鈔)』[1690~1700] 90권이고, 쌍계사에서 간행한 불서는 『대승기신론필삭기회편(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1695] 4권, 『주치문경훈(註緇門警訓)』[1695] 3권이다. 당시 간행했던 목판은 징광사에 보관했으나 1770년(영조 46)에 발생한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사상과 저술]

성총은 스스로 지은 많은 글을 남겼는데, 제자들이 엮어 간행한 것으로 『정토찬(淨土讚)』과 『백암집(栢庵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성총의 법맥을 이은 묵암(默庵) 최눌(最訥)[1717~1790]이 징광사[1765]와 송광사[1766]에 백암 성총의 탑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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