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317
한자 仙巖寺華山大師舍利塔
영어공식명칭 Stupa of Buddist Mont Hwasa from Seonamsa Temple
영어음역 Stupa of Buddist Mont Hwasa from Seonamsa Temple
영어공식명칭 Stupa of Buddist Mont Hwasa from Seonamsa Temple
이칭/별칭 화산대사 사리탑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모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23년연표보기 - 화산대사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화산대사 사망
건립 시기/일시 1917년 - 선암사 화산대사사리탑 건립 추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6년 2월 - 선암사 화산대사사리탑 사자상 2구 도난
현 소재지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지도보기
원소재지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
성격 부도|승탑
양식 4사자3층승탑
관련 인물 화산 오선
재질
크기(높이) 4.1m[높이]
소유자 선암사
관리자 선암사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순천 선암사 탑비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고승 화산대사의 승탑.

[승탑 주인공]

화산대사(華山大師)[1823~1914]는 조선 후기 고승인 침명(枕溟) 한성(翰醒)[1801~1876]의 법제자이고, 경붕(景鵬) 익운(益運)[1836~1915]의 친형으로 한말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순천 선암사에서 활동한 고승이다. 순천 선암사에 화산대사진영이 전한다.

[건립 경위]

1917년에 간행된 『조선불교총보』6의 「화산선사(華山禪師)의 사리출세(舍利出世)」에 “5월 16일에 기 폐지(其廢止)하였던 화장실(火葬室)을 갱위수선(更爲修繕)할 새 사역공(使役工)으로 훼철(毁撤)한즉 기 좌대하(其坐臺下)에서 사리(舍利) 23개가 찬연발현(燦然發現)인데 … 자기본산(自其本山)으로 건탑봉안(建塔奉安)하기로 계획중(計劃中)이라”라는 기록이 있다. 1917년에 화장실 수리공사 중 사리가 발견되어 화산대사의 사리탑 건립을 계획 중이라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이 1917년경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선암사주차장에서 순천 선암사로 향하는 길을 약 1.2㎞ 정도 오르면 오른쪽에 선암사 탑비전이 마련되어 있는데, 순천 선암사 탑비전 맨 앞쪽에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이 있다.

[형태]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은 4매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결구(結構)된 지대석(址臺石) 위에 방형의 하대석(下臺石)을 놓았는데, 하대석의 4면에는 완자문(卍字紋)이 시문되어 있다. 기단부는 단층으로 방형 대좌 위에 앉은 4마리의 사자상을 배치하여 기단 중석을 대신하였다. 사자의 형태는 다소 둔중하나 사실적인 표현이 보인다. 기단갑석에는 중판앙련(重辦仰蓮)을 치밀하게 조출(彫出)하였고, 그 상단에는 난간을 만들고 동자주(童子柱)[도리나 마룻대를 받치는 짧은 기둥]를 받침으로써 장식적인 의장(意匠)을 엿볼 수 있다. 갑석[돌 위에 다시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 상면에는 2단의 연화좌(蓮華座)[불보살이 앉는 대좌]를 조출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부 중 1층 탑신석 중앙에 ‘화산대사사리탑(華山大師舍利塔)’이라는 명문이 음기되어 있어 이 승탑의 주인공이 화산당 오선(晤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좌측면에 ‘경석공(京石工) 황대인(黃大仁)’이라고 음기로 기록되어 있어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의 석공이 경성[현 서울특별시]에서 활동했던 황대인임을 알 수 있다. 옥개석[지붕돌]은 비교적 평박하고 낙수면의 경사도 완만한 편이며, 옥개석 층급받침 수는 모두 4단이며, 상면에 2단의 각형 탑신받침을 조출하였다. 탑신석에는 각층 모두 양우주가 뚜렷한데, 초층에 비해 2층과 3층의 체감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다소 세장한 모습을 보인다.

상륜부[쇠붙이로 된, 원기둥 모양의 장식이 있는 불탑의 꼭대기 부분]는 방형[사각형 형태]의 노반(露盤)과 타원형의 복발(覆鉢)을 두고 그 위에 다시 작은 개석(蓋石)을 얹었는데 방형의 옥개석 형태여서 탑의 전체적인 모습이 4층탑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그 위에 노반 복발을 얹고 그 위에 연봉형(蓮峰形)의 보주(寶珠)를 놓았다.

[현황]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의 후면에 있었던 사자상 2구[1986년 2월]와 가운데 공양자상 1구는 도난당하여 행방을 알 수 없으며, 사자상은 도난된 뒤 그 자리에 새로 조성하였다.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특징]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은 전체적인 형태에서 통일신라 작품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求禮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국보 제35호]이나 고려시대 작품인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堤川獅子頻迅寺址四獅子九層石塔)[보물 제94호]을 모방하여 조성된 승탑이지만 조형미에 있어서 원본에 비해 떨어진다.

[의의와 평가]

선암사 화산대사 사리탑은 우리나라 승탑에서는 그 작례를 찾아볼 수 없는 4사자3층석탑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 1917년경이라는 조성연대와 황대인이라는 조성자를 알 수 있어 전라남도 지역 근대시기 승탑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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