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22
한자 善修
영어공식명칭 Seon Su
영어음역 Seon Su
영어공식명칭 Seon Su
이칭/별칭 부휴(浮休),홍각등계(弘覺登階)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3년연표보기 - 선수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15년연표보기 - 선수 사망
출생지 선수 출생지 -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학교|수학지 합천 해인사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치인리 10]
활동지 순천 송광사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송광사와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승려.

[활동 사항]

선수(善修)[1543~1615]는 전라도 오수[현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적산(金積山)이고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며, 법호는 부휴(浮休)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께 “부질없는 세상이 매우 어두우니 저는 출가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더니, 마침내 지리산으로 가서 승려 신명(信明)에게 출가하였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부용(芙蓉) 영관(靈觀)[1485~1571]에게 가르침을 받고 법을 인가(印可) 받았다. 그 후 재상 노수신(盧守愼)[1515~1590] 집안의 장서를 빌려 7년 동안 열람하여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글씨도 아름다웠는데,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본받아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1544~1610]과 함께 이난(二難)이라 일컬어졌다.

선수는 1609년(광해군 원년) 가을에는 순천 송광사의 요청으로 제자 400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정유재란 때 소실된 건물을 재건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612년(광해군 4) 4월에는 황혁(黃赫)[1551~1612]의 역모사건으로 무고(誣告)를 당해 궁중에서 국문(鞠問)을 받기도 하였으나 광해군이 훌륭한 고승임을 알아차리고 자란가사(紫蘭袈裟)와 염주 등을 하사하고 풀어주었다. 또 남양주 봉인사에서 국재(國齋)를 열 때 선수를 보내 증명법사로 삼았다.

이후 선수는 지리산 일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수행하였다.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에 이름을 전하고 있는 제자로는 벽암(碧巖) 각성(覺性)[1575~1660]을 비롯하여 송암(松岩) 계익(戒益), 뇌정(雷靜) 응묵(應黙), 대가(待價) 희옥(希玉), 송계(松溪) 성현(聖賢), 고한(孤閑) 희언(熙彦), 보감(寶鑑) 혜일(惠日) 등이 있다. 1615년(광해군 7) 쌍계사 칠불암에서 벽암 각성에게 법을 부촉(咐囑)[부탁하여 맡김]하고 입적하였다. 광해군은 선수에게 ‘홍각등계(弘覺登階)’의 호를 추증하였다. 대사의 승탑은 순천 송광사, 합천 해인사, 지리산 칠불암, 지리산 백장암에 있다.

[일화]

선수에 관해 비문에 전하는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부휴대사(浮休大師)는 1592년(선조 25) 덕유산 깊은 골짜기에 은거하여 수행하던 중 왜군 10여 명과 마주쳤다. 왜군이 칼로 위협하는데도 대사가 온화한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자 크게 기이하게 여기며 모두 대사에게 절하고 물러났다. 또 1595년(선조 28) 부휴대사가 해인사에 주석[선종(禪宗)에서 승려가 입산안주(入山安住)하는 일]하고 있을 때 명나라 장수 이종성(李宗誠)이 와서 대사를 만나고는 돌아갈 것도 잊고 머물면서 여러 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사가 덕유산 구천동에서 『원각경(圓覺經)』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데 스륵스륵하는 소리에 쳐다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섬돌 아래 누워 볕을 쬐고 있었다. 대사가 읽기를 멈추고 뱀 꼬리를 치자 구렁이는 꿈틀거리며 떠나갔다. 그날 밤 꿈에 어떤 노인이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대사의 설법에 힘입어 고통을 벗어났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의의와 평가]

선수는 부용 영관의 제자로서 청허(淸虛) 휴정(休靜)[1520~1604]과 동문이다. 그런데 휴정이 승과에 합격하고 임진왜란 때 도총섭으로서 활약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선수는 그다지 사회적 활동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리산 학인 승려들로부터 신망(信望)이 높았으므로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 선수의 제자들이 계파를 이루어 휴정의 청허계와 더불어 조선 후기 불교계를 양분하였다. 부휴계는 지리산 일대에서 성장하여 전국으로 흩어져 문파를 이루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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