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24
한자 若休
영어공식명칭 Yak Hyu
영어음역 Yak Hyu
영어공식명칭 Yak Hyu
이칭/별칭 호암(護岩)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4년연표보기 - 약휴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675년 - 약휴 선암사 승려 경준에게 출가
출가|서품 시기/일시 1676년 - 약휴 침굉 현변에게 수계
활동 시기/일시 1703년 - 약휴 예조에 도승통제 건의
활동 시기/일시 1736년 - 약휴 팔도도총섭으로 자헌대부장진승군대장에 임명되어 북한산성에 부임
몰년 시기/일시 1738년연표보기 - 약휴 사망
출생지 약휴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학교|수학지 순천 선암사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팔도도총섭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선암사를 중창한 순천 출신의 승려.

[활동 사항]

약휴(若休)[1664~1738]는 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국의 승풍(僧風)을 바로 잡았던 고승으로 법호는 호암(護巖)이다. 순천 쌍암면 죽림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에 추증된 오응신(吳應信)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약휴는 12세인 1675년(숙종 원년) 선암사 승려 경준(敬俊)에게 출가하였으며, 1676년 침굉(枕肱) 현변(懸辯)[1616~1684]에게 수계(受戒)하였다.

약휴선암사 주지를 역임하였으며 사찰 중창을 주도하였다. 1698년(숙종 24) 원통각(圓通閣)을 세워 관음상을, 1702년(숙종 28)에는 불조전(佛祖殿)을 지어 53불의 전단상(栴檀像)과 탱화를 조성하였다. 1703년에는 법당을 중수하고 오십전(五十殿)을 개와(改瓦)하였다. 1703년에 홀로 한양에 가서 채팽윤(蔡彭胤)[1669~1731]에게 「조계산선암사중수비」의 비문을 부탁하여 받아왔다. 1706년(숙종 32) 아도(阿道)·도선(道詵)·대각(大覺) 세 창건주의 영각(影閣)을 세웠다. 1707년에 승선교(昇仙橋)를 처음 세우고, 채팽윤의 「조계산선암사중수비」의 비석을 세웠다. 「조계산선암사중수비」 음기(陰記)에 의하면 당시 선암사에 상주하는 승려가 250인이고, 법당(法堂) 8위, 전사(殿舍) 12위, 요사채 16위이며, 산내 암자로 13처가 있고, 부속 암자로 용안산(龍眼山) 선적암(善積庵)과 운동산(雲動山) 도선암(道詵庵)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약휴를 ‘선암사의 수호자’라는 의미에서 ‘호암(護巖)’이라고 불렀다.

약휴선암사를 중창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란해진 승풍(僧風)을 바로잡기 위해 1703년 한양에 가서 예조에 도승통제(都僧統制)를 건의하였다. 약휴가 건의한 도승통제는 선암사를 전라도 수반종찰(首班宗刹)로 삼고 매년 상반기에 우도(右道) 금산사에 머물며 우도의 승풍을 규정하고 하반기에는 좌도(左道) 옥룡사에 거처하며 좌도의 승풍을 규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예조의 첩지를 받아 도승통이 되어 봄가을로 전라도 사찰을 돌아다니며 승풍을 바로 잡았다. 이는 훗날 전국 사찰에 규정소(糾正所)가 설치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 후 1736년(영조 12)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서 자헌대부(資憲大夫) 장진승군대장(壯鎭僧軍大將)에 임명되어 북한산성에 부임하였다. 이때 북한산성 승영(僧營) 사찰인 중흥사 대웅전과 산영루(山影樓) 및 태고국사의 영전(影殿)과 비각(碑閣) 등을 중수하였다. 그리고 전국의 승려들이 번갈아 가며 산성의 수비를 맡는 윤번제(輪番制)가 큰 고통을 주므로 ‘입역(立役)의 차례가 된 승려가 돈을 내어 승군을 고용하도록 하는 방번전제(防番錢制)’를 조정에 건의하여 받아들여 졌다. 이로써 전국의 승려가 직접 부역하는 일이 그치게 되었다. 또한 청규(淸規)를 만들어 승려의 규율을 바로잡으니 이른바 ‘호암청규(護巖淸規)’라고 불리었다.

[사상과 저술]

약휴는 만년에 경전을 염송하고 『법화경(法華經)』을 필사하였는데, 한 글자 쓸 때마다 세 번 절하여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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