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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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己春 |
영어공식명칭 | Lee Gi-chun |
영어음역 | Lee Gi-chun |
영어공식명칭 | Lee Gi-chun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홍영기 |
[정의]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강진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 사항]
이기춘(李己春)[1879~1909]은 전라남도 순천군 초천면(草川面) 덕산(德山)[현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두고리 덕산마을]에 거주하였다.
대한제국은 190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집요한 침략정책에 의해 허울만 남은 국가로 전락했다. 망국적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전라도의 경우에는 임진왜란 의병의 전통을 계승하여 수많은 민중이 목숨을 걸고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이기춘은 호남의 의병 중 한 사람으로서 흔히 강승지(姜承旨) 의진으로 알려진 강진원(姜振遠)[일명 강형오(姜炯吾), 1881~1921]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강진원 의병장은 현 순천시 서면(西面) 출신으로 동지들과 함께 순천 지역의 조계산(曹溪山)을 주된 근거지로 삼아 의병을 일으켰다. 강진원은 주로 순천 지역에서 활동하였지만, 인근의 고흥(高興)[옛 흥양(興陽)], 광양, 보성 지역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일본 군경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08년 10월 29일 이기춘은 오응삼(吳應三)[1864~1909] 등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순천경찰서에서 당시 흥양주재소로 부임하던 일본인 순사 택전심길(澤畑甚吉)을 요격(邀擊)[공격해 오는 대상을 기다리고 있다가 도중(途中)에서 맞받아침], 처단하였다.
1908년 12월 이후 이기춘은 동료 의병 8명과 함께 고흥 및 순천 등지에서 군자금을 조달하는 활동을 벌였다. 1909년 3월 이기춘은 군자금을 모금하던 중 오응삼과 같이 흥양주재소 순사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일본인 순사는 이들을 광주지방재판소로 호송하기 위해 순천군 소안면(蘇安面) 장내리(墻內里)[현 순천시 옥천동] 산길에 이르렀다. 이때 이기춘을 비롯한 오응삼 등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일본인 순사들이 이기춘과 동지들을 참살(斬殺)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불법적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훈과 추모]
이기춘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