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61 |
---|---|
한자 | 張載模 |
영어공식명칭 | Jang Jae-mo |
영어음역 | Jang Jae-mo |
영어공식명칭 | Jang Jae-mo |
이칭/별칭 | 수환(樹煥),은선(隱先),성수(聖樹)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영기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 장재모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 장재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장재모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거주|이주지 | 장재모 거주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인동(仁同) |
[정의]
근대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안규홍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장재모(張載模)[1883~1945]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신평(新坪)에서 살았다. 장재모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수환(樹煥), 호는 은선(隱先)이며, 이명은 성수(聖樹)이다.
[활동 사항]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은 20세기에 이르러 더욱 가속하였다. 일본은 고종에게 헤이그특사사건의 책임을 물어 양위(讓位)를 강요하여 쫓아냈으며,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내정간섭을 강화하였다. 이에 격분한 우국지사와 민중들이 의병을 결성하여 구국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순천 지역에서도 의병항쟁이 본격화되었는데, 순천 지역 출신의 조규하(趙圭夏)[1877~1908] 및 강진원(姜振遠)[1881~1921] 의병장이 두각을 나타내었다. 보성(寶城) 지역의 머슴 출신 안규홍(安圭洪)[1879~1910] 의병장도 순천 지역의 조계산(曹溪山)에 근거지를 구축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장재모는 아마도 이 시기에 안규홍 의병부대에 참가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재모는 1908년 이후 안규홍 의병부대에서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를테면 보성 지역의 파청(巴靑), 진산(眞山), 원봉(圓峰) 등의 전투에서 유격장(遊擊將)으로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나아가 이들은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세력의 처단, 주민들을 괴롭히는 토호의 척결 등의 활동을 통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다. 전라도의 강력한 항일투쟁으로 식민화가 지연되고 거의 무정부상태에 빠지자, 일본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전라도 일대에서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군사작전으로 말미암아 전라도 의병은 막대한 피해를 당하고 대부분 체포되거나 전사하였다. 결국, 안규홍 의병부대는 후일을 도모하기로 하고 해산하자, 통분의 한을 간직한 채 은거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상훈과 추모]
장재모는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