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의 배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167
한자 仙巖寺-
영어공식명칭 Baebawi of Seonamsa Temple(Folktale)
영어음역 Baebawi of Seonamsa Temple(Folktale)
영어공식명칭 Baebawi of Seonamsa Temple(Folktale)
이칭/별칭 배바위 전설,배바위와 승선교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서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6년 - 「선암사의 배바위」 『승주향리지』에 「배바위 전설」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선암사의 배바위」 『순천시의 문화유적』Ⅱ에 「선암사의 배바위」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3년 1월 21일 - 「선암사의 배바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에 「배바위와 승선교」로 수록
관련 지명 순천 선암사|배바위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지도보기
성격 신이담|건물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호암선사|선녀[관음보살]
모티프 유형 간절한 기도에 하늘이 응답하다.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에 있는 순천 선암사의 뒷산 배바위에 얽힌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선암사의 배바위」는 승주향리지편찬위원회가 1986년 간행한 『승주향리지』에 「배바위 전설」, 순천시와 순천대학교박물관이 1992년 간행한 『순천시의 문화유적』Ⅱ 570~571쪽에 「선암사의 배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에는 「배바위와 승선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각각 채록 시기, 장소, 제보자 등은 별도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내용]

순천 선암사는 528년(성왕 6) 아도화상(阿度和尙)에 의해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처음 이름은 ‘이로암(異盧菴)’이었다. 이후 840년(문성왕 2)에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중창하고 1092년(성종9)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이 손질한 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본래 ‘해천사(海川寺)’라고 불리던 순천 선암사의 완전한 복구를 위해 호암선사가 절의 뒤편에 있는 배바위에 올라 백일기도를 올렸다. 호암선사는 향로에 목향(木香)을 꽂아두고 기도의 힘으로 목향에 불이 붙는다면 부처님의 원력으로 절의 중수를 마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일기도가 다 끝나가도 목향에 불이 붙지 않자 상심한 호암선사배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버렸다. 그때 하늘에서 코끼리를 탄 선녀가 내려와 선사를 받아 배바위 위에 올려놓은 뒤 하늘로 올라갔다. 정신을 차린 호암선사는 그 선녀가 관음보살이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이 부처님의 뜻인 줄 알고 배바위에서 내려와 원통전을 짓고 승선교를 만들었다. 이후 해천사가 순천 선암사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모티프 분석]

「선암사의 배바위」순천 선암사의 중창에 얽힌 이야기로, ‘간절한 기도에 하늘이 응답하다’라는 모티프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인간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하늘에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모티프는 예부터 구전설화의 주요 모티프가 되어 여러 유형의 이야기에 삽입되어 전승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들은 대개 해당 사찰의 신성화를 통해 불교를 대중화하려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져 민간에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구전되는 동안 각종 설화적 영험성 등이 추가되어 민간에 널리 전승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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