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목동의 아들나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221
한자 生木洞-
영어공식명칭 Adeulnamu of Saengmokdong(Folktale)
영어음역 Adeulnamu of Saengmokdong(Folktale)
영어공식명칭 Adeulnamu of Saengmokdong(Folktale)
이칭/별칭 생목동 유래와 당산나무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생목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 「생목동의 아들나무」 『순천시사』-자료편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7년 - 「생목동의 아들나무」 『걸으면서 배우는 순천』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3년 - 「생목동의 아들나무」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8년 - 「생목동의 아들나무」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
성격 마을유래담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생목동에서 전해오는 마을나무에 관한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생목동의 아들나무」는 1997년 순천시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순천시사』-자료편, 2007년 순천시가 발생한 『걸으면서 배우는 순천』, 2013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순천시 생목동은 고려 중엽에 성촌(成村)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 석씨가 들어와서 살았고, 이후에 민씨와 설씨가 합류해서 마을을 구성했다.

마을 사람들은 성촌을 기념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었다. 처음에는 두 그루를 심어서 아비나무와 어미나무라 불렀다. 이후에 한 그루를 더 심어서 아들나무라 불렀다. 나무가 잘 자라면서 마을도 번성했다.

어느 해, 아들나무가 고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마을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잘 자라던 벼가 말라죽는가 하면 밭에 심었던 농작물도 수확할 수 없게 되었다. 멀쩡하던 가축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는가 하면, 민가에 불이 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들나무가 고사했기 때문에 마을의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욕재계하고 목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순간 어미나무에서 뿌리가 뻗치면서 아들나무에 닿았다. 아들나무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1월 1일 자시(子時)가 되면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

아비나무는 1945년에 고사했고, 연이어 어미나무도 말라 죽었다. 1989년 국도 확장공사로 인해서 아들나무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마을 앞 길가에 마을 유래를 알리는 비석만 남아있다.

[모티프 분석]

「생목동의 아들나무」는 마을 유래담이다. 석씨, 민씨, 설씨가 모여서 마을을 구성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여기에 생목동 당산나무를 심은 사연과 영험담이 함께 이야기된다. 마을 제사를 지낸 연유와 전승, 단절 사연을 담고 있어서 마을 신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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