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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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Mosimgi Norae(Rice Planting Song, Farmers' Song) |
영어음역 | Mosimgi Norae(Rice Planting Song, Farmers' Song) |
영어공식명칭 | Mosimgi Norae(Rice Planting Song, Farmers' Song) |
이칭/별칭 | 상사소리,늦은 상사소리,잦은 상사소리,농부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5년 - 「모심기노래」 『한국구비문학대계』 6-4 전라남도 승주군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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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시기/일시 | 1986년 8월 - 「모심기노래」 지춘상에게 채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7년 - 「모심기노래」 『전남의 농요』에 수록 |
채록지 | 「모심기노래」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
채록지 | 「늦은 상사소리」, 「잦은 상사소리」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 |
성격 | 노동요 |
형식 구분 | 선후창 |
가창자/시연자 | 조막동|김기두|정병옥|한재옥 |
[정의]
전라남도 순천에서 논에 모를 심으며 부르는 노동요.
[개설]
「모심기노래」는 못자리에서 뽑아온 모를 논에 심으며 부르는 노래로 ‘상사소리’, ‘농부가’라고도 한다. 일꾼들이 논에 늘어서서 모를 심을 때 손을 맞추고 일의 능률을 올리며, 지겨움을 덜기 위해 「모심기노래」를 부른다.
「모심기노래」의 사설은 작업 독려, 선영과 부모에 대한 존중, 자손의 번영과 가정의 화평 희구, 남녀의 연정, 부귀영화에 대한 갈망 등 전통 사회 성원들의 감정과 욕구, 생활상 등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채록/수집 상황]
순천의 「모심기노래」는 198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6-4 전라남도 승주군에 「모심기노래」와 「상사소리」라는 제목으로 7편이 수록되어 있다. 박순호가 1983년부터 1984년까지 순천시의 서면·쌍암면·주암면·상사면·황전면에서 채록한 것으로, 조사 일시, 조사 장소, 가창자, 구연 상황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1987년 전라남도에서 발행한 『전남의 농요』에는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의 「모심기노래」,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의 「늦은 상사소리」와 「잦은 상사소리」가 수록되었다. 1986년 8월 지춘상이 채록한 것으로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모심기노래」는 조막동·김기두·정병옥·한재옥이 구연했고,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 「모심기노래」는 조막동·김기두·정병옥·한재옥이 구연했다.
[구성 및 형식]
순천의 「모심기노래」는 선후창 형식으로 불린다. 앞소리꾼이 사설을 메기면 모를 심는 사람들이 후렴을 받는다. 「모심기노래」는 빠르기에 따라 「늦은 상사소리」와 「잦은 상사소리」로 구분된다. 같은 노래를 속도를 달리하여 느리고 빠른 노래 체계를 만들었으며, 작업의 속도에 맞추어 불렀다.
[내용]
「늦은 상사소리」
여보소 농부들 내 말 듣소 / 여보소 농부들 내 말 듣소
점심 때가 다 돼가니 / 손 세우소 손 세우소
우리 농부들 손 세우소 / 어~허~ 허~여루 상~사~뒤~여~
아나 농부 내 말 듣소 / 아나 농부야 내 말 듣소
이 농사를 지어가지고 / 선영 봉사 허신 후에
부모 봉양 허여 보세 / 에~헤~에 에허~이허~루 상~사~뒤~여~
여보소 농부 내 말 듣소 / 여보소 농부 내 말 듣소
서마지기 논배미가 / 반달만큼 남았네
에~헤~에 에허~이허~루 상~사~뒤~여~
「잦은 상사소리」
어~허~이어루 상사뒤~어~ / 가노라 간다 나 돌아간다
저 님을 따라서 내 돌아가네 / 허~어~어루 상~사~뒤이~허~
나렸다네 나렸단다 / 전라 어사가 나렸단다
어허~어 어허~어루 상~사뒤~허~ / 산신령 가마귀는 가옥가옥하는데
우리님의 병사는 점점 깊어가네 / 어허~어어루 상사뒤~여~
살리 살이 / 살이 중에 / 무슨 살이 / 제일일꼬
콩살이는 / 입만 끌고 / 담살이는 / 배 고푸고
시집살이 / 속만 타고 / 양주[양자] 살이 / 제일 좋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순천에서는 모를 심을 때 품앗이로 일을 했다. 순천시 낙안면에서는 모찌는 일과 모심는 일을 주로 여자들이 했으며, 남자들은 못줄을 잡아주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현황]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게 된 후에는 「모심기노래」의 현장적 기능이 사라졌다. 순천에서도 1980년대 이후 논농사 현장에서 「모심기노래」를 부르는 행위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해 현재에는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의의와 평가]
모심기는 논매기와 함께 논농사의 핵심적인 작업이다. 「모심기노래」는 강원도의 「아라리」, 경기도의 「하나소리」, 경상도의 「정자소리」, 충청도와 전라도의 「상사소리」로 전국적 분포를 이루고 있다. 순천 지역의 「모심기노래」는 전라도 지역의 「상사소리」에 해당하는 소리로서 민요문화권의 동질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