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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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濟時代國境-順天劍丹山城 |
영어공식명칭 | Baekje period border guard-Sunchon Keomdan-Sanseong |
영어음역 | Baekje period border guard-Sunchon Keomdan-Sanseong |
영어공식명칭 | Baekje period border guard-Sunchon Keomdan-Sanseong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박태홍 |
[정의]
백제 국경 주변 지역에 설치된 전라남도 순천시의 산성.
[개설]
순천 검단산성이 위치한 전라남도 동부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혹은 가야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방어를 위한 다수의 백제 산성이 축조되었다. 이들 산성은 축조 방법이나 입지 등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 가운데 순천 검단산성은 성곽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성곽의 축조와 내부시설의 배치 등 국경 지역 백제 성곽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또한 백제시대 행정 체계와 관련하여 순천 검단산성이 위치한 전라남도 순천 지역은 전라남도 여수시와 광양시 등의 주변 영역까지 관리하는 지역에 해당하여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검단산성의 축조 배경]
순천 검단산성이 있는 전라남도 순천시는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해 북으로는 호남정맥의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남으로는 해안선이 이루어져 있다. 동으로는 섬진강이 북으로 연결되어 물산이 풍부하고 교통이 활발한 지역에 해당한다. 이러한 점은 이 지역에 선사시대의 유적이 확인되는 양상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서 가야·신라와의 접경지대에 해당하여 군사적인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백제시대 순천 지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 확인된다. 삼국시대에 지금의 순천시와 옛 승주군 지역은 모두 백제의 영토로서 관호는 군이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따르면 당시의 지명이 삽평 또는 사평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 지방에는 삽평군에 접하여 분차군·둔지현이 있었으며, 삽평군은 원촌현·돌산현·마로현의 3개 현을 다스리던 행정치소로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삽평군의 속현으로 원촌현, 마로현이 배치되었는데, 현재의 지명으로 볼 때, 군 지역은 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이며, 속현은 광양 및 여수 지역을 포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지리적 행정적 배경 아래 순천 검단산성이 축조되었으며, 군사적으로 접경 지역에 설치된 중요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백제 순천 검단산성 주변 방어체계]
삼국시대 백제의 접경 지역 성곽의 입지 조건에서 성곽이 축성된 위치, 주변 지형과의 관계를 보면 백제 성곽은 주변에 넓은 뜰이나 강을 끼고 있으며, 이러한 뜰이나 하천을 향해 돌출된 부분에 위치하여 평지에서의 시인성이 높은 지역에 위치한다. 이러한 점은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확인된다.
한편 백제 산성의 주변 지역에서 확인된 고고학적인 자료와 문헌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볼 때, 성곽이 축조된 지역은 지속적인 거점지역으로서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문헌 자료와 기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전라남도 동부 지역 삼국시대의 성곽은 16개소에 이른다. 이들 성곽은 삼국시대에 한정되어 축조되고 사용된 경우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 및 조선시대까지 같은 입지상에서 추가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확인된 백제 산성은 전라남도 고흥군과 여수시 같은 반도 지역에 6개소, 반도의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에 2개소, 해안을 따라 축조된 경우가 5개소, 내륙의 강가에 있는 경우 3개소 등이다.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백제 산성 간 거리는 2.5~31㎞ 정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체로 15~25㎞ 내외이다. 특히 2.5~5㎞ 이내의 간격으로 배치된 경우도 있는데, 이들 산성은 서로 맨눈으로 관찰되는 근접 지역에 위치한다. 이러한 점은 가까운 거리에 서로 배치되어 의지하고 호응하여 적의 침입 시 서로 연계하여 수비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성곽과 군·현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동쪽과 해안선에 백제 군·현의 행정 조직상에서 1~3개소의 산성이 배치된 반면, 내륙 쪽은 수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산성의 배치와 관련하여 입지상 군사적 중요 지역인 교통로나 국경 지역에 설치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곳에서 확인된 산성들은 서로 근접한 지역에 위치하며, 성벽의 규모가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내륙 쪽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산성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며, 백제 지방 행정체제 상에서 군으로 정해지는 지역에 해당한다. 순천 검단산성의 경우 방-군-성 체제에서 군에 해당하는 지역인 삽평군에 위치하여 행정 조직상의 위상과 관련하여 중요성이 높다.
[순천 검단산성의 구조를 통해 본 백제산성]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백제 산성의 축조 방법은 여러 가지 정형성을 갖는다. 먼저 성벽 축조 방법의 경우 협축식의 축조 방법, 토사와 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보축시설, 들여쌓기의 수법, 사용된 성돌의 치석 등은 동일한 양상을 보이는데 고구려의 성곽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성벽의 축조에 있어서 규모는 500m 내외이며, 석축으로 이루어졌다. 입지는 해발 69.8~272.8m로 비교적 낮은 야산에 있으며, 산성 주변으로는 하천과 평야가 발달하여 생산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지역이다. 순천 검단산성 역시 이러한 입지와 같은 양상을 보이며, 인근 지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백제 산성 가운데 당시의 현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유적이다. 순천 검단산성의 세부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순천 검단산성 성벽 둘레는 430m이며, 3개소의 문지가 확인되었다. 성곽 내부에서는 지상건물지 5개소, 수혈건물지 5개소, 집수정 3개소, 대형우물 1개소, 수혈 1개소, 저장시설 1개소, 옹관 2기 등이 조사되었다. 건물지 중 12각 건물지는 삼국시대에는 흔하지 않다. 기능적인 면에서도 제의적 성격이나 산성 같은 곳에서는 외부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전망대의 기능 등 특수 목적의 건물지로 파악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내부시설의 배치를 볼 때 내부 정상 평탄지는 공지를 두어 광장시설로 활용하였는데, 이 공간에서 집회나 훈련 등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건물지는 공지의 외곽으로 배치하였다. 순천 검단산성의 경우 조사된 건물지는 대부분 정상부 평탄지 외곽이나 경사면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위세가 있는 초석건물지의 경우 조망권이 탁 트인 전면 쪽으로 배치되었다. 집수정(集水井)[물 저장고]은 대부분 문지 주변에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산성 내부시설의 배치는 소형 광장을 중심으로 그 외곽이나 사면부에 유구(遺構)가 배치되는 형식을 취하였으며, 물이 모이는 곳에는 대형의 석조 집수시설을 각기 설치하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부적으로 성벽은 내·외벽을 모두 쌓아 올린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되었다. 너비는 500~510㎝로 거의 일정하나 남쪽 급경사 부분의 너비는 550㎝ 내외로 다른 부분에 비해 약간 두껍다. 기초부는 석비레층[푸석푸석한 돌이 많이 섞인 흙으로 된 지층]을 ‘ㄴ’자형으로 판 후 별도의 기단을 두지 않고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렸다. 벽석은 20~80㎝ 크기의 할석을 이용하여 고른 면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쌓아 올렸다. 면석의 면이 고르지 않은 경우 쐐기를 박았으며, 성돌 크기는 전체적으로 상·하의 차이가 없다. 성벽의 내·외벽 사이는 생토면(生土面) 위에 30~50㎝ 정도 높이로 흙과 잡석을 채웠다. 외벽의 기단부를 보호하기 위해 적갈색 점질토와 기와 편, 잡석을 혼합하여 다짐하였다. 성벽의 외벽과 내벽을 축조한 후 중앙 부분을 채웠다. 성벽 관련 시설로는 3개소의 문지가 조사되었으며, 개구부의 바깥쪽 모서리는 모두 말각[모서리의 각을 죽이거나 없애는 것]을 이루고 있다. 남문지의 경우 내부에 배수로를 설치하였다. 문의 너비는 안쪽 340~440㎝, 바깥쪽 240~380㎝ 정도로 남문지가 가장 크다. 문지 관련 시설로는 문주공과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집수지는 4개소가 확인되었는데, 서쪽 가장 낮은 곳에 대형 석축 집수지[대형우물]가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총 10개가 확인되었으며, 이 중 수혈건물지 5개소, 벽주건물지 1개소, 초석건물지 4개소이다. 건물지 가운데 초석이 있는 건물지는 대형우물의 동쪽에서 확인되었다. 우물에서 동쪽으로 6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높이 120~150㎝, 너비 300㎝, 길이 13.2m의 축대가 있고 축대 동쪽으로 건물지가 마련되어 있는데, 초석의 배열 상태로 보아 정면[남-북] 3칸, 측면[동-서] 2칸의 건물로 추정된다. 다각형의 초석 건물지가 산성의 정상부에서 확인되었다. 현재는 4각만 남아 있으나 그 형태로 보아 12각 건물지로 추정된다. 중앙부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3열의 초석이 원형으로 놓여 있다.
[전남 동부 지역 백제 산성의 축조와 순천 검단산성]
산성의 축조 시기는 6세기 전반경 백제가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 대한 지방 체제 정비를 이루면서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일정 기간 가야와 대립 관계를 이루는 시기이다. 그리고 성곽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 등을 볼 때, 6세기 중후반 경의 유물이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6세기 중반경은 백제의 지방통치체제가 완성되어가는 단계이며, 섬진강을 경계로 신라와 직접적인 대립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지역 백제 산성의 축조는 백제 사비기 지방행정조직 개편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확인된 백제 산성의 축조 방법과 축조 시기가 거의 동일하게 확인되며, 입지적인 측면에서도 비슷한 속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문헌 기록에서 확인되는 방·군·성의 각기 행정 조직상에서 축조되는 성곽의 규모가 제한적인 것으로 볼 때, 이 지역에서도 유사한 속성을 찾을 수 있다. 군 지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인 삽평군[지금의 순천시]과 분차군[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일원] 지역에서 확인된 성곽은 주변 지역에서 확인된 성곽에 비하여 규모가 크다는 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고 군 지역에 있는 성곽 주변으로는 2~3개의 성곽이 배치된 양상으로 확인되는데, 이들 성곽은 접경지대나 해안선을 따라 점으로 연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접경지대를 따라 연결되는 소규모 성곽이 서로 유기적으로 대응하며, 이차적으로 군 지역에 있는 중간 규모의 성곽과 연결되는 양상으로 이중의 방어체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을 통하여 삼국시대 성곽의 경우 군사적인 측면에 우선하여 성곽이 축조되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볼 때, 순천 검단산성은 삼국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중요 군사 지휘 체계상 비중이 높은 지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계를 바로 보여주는 것이 성곽 내부에서 확인된 내부 구조물 가운데 12각 건물지와 대형 초석건물지 등이다. 이와 같은 구조물은 주변 지역에서 확인된 백제 산성의 내부 구조물보다 그 위상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 축조된 검단산성은 백제시대 주변 지역을 관리하던 행정적, 군사적 지역 거점 시설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