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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377
한자 順天烽火山城
영어공식명칭 bonghwasanseong Fortress, Suncheon
영어음역 bonghwasanseong Fortress, Suncheon
영어공식명칭 bonghwasanseong Fortress, Suncheon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산 50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태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845년연표보기 - 순천 봉화산성 건물지 조성
현 소재지 순천 봉화산성 -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산50 지도보기
원소재지 순천 봉화산성 -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산50
성격 산성
양식 테뫼식
크기(높이,길이,둘레) 1,250m[둘레]|710~730㎝[너비]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봉화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산성.

[건립 경위]

순천시 주변 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산성은 삼국시대의 산성에 비해 비교적 높은 해발고도, 넓은 면적, 성벽의 축성 방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순천 봉화산성은 기록상에는 확인되지 않지만, 성곽의 축조양상이나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토대로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위치]

순천 봉화산성순천시 용당동서면 압곡리 일원 해발 335.9m의 봉화산 정상부에 있다. 봉화산은 지리적으로 현재 순천 시내권의 중앙에 해당한다.

[형태]

순천 봉화산성은 전체 둘레 1,250m 정도의 테뫼식 산성[산정식 산성, 산봉우리 중턱쯤에 한 바퀴 휘돌아 쌓는 형식]이다. 성벽은 협축식 석성으로 축조하였으며, 너비는 701~730㎝이다. 성벽 축조방식은 기초부에 대형의 지대석을 놓고, 잘 가공한 성돌을 사용하여 내외협축으로 축조하였다. 지대석의 상면에서는 그랭이기법이 확인되었다. 이는 성벽의 구조적인 안정성을 도모하고, 석재의 가공부터 축조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뛰어난 축성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시굴 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는 일부 초석과 기단이 훼손되었지만, 규모 남-북 19.4m, 동-서 7.6m, 정면 초석 간 거리 2.3~2.5m, 측면 2.5~3.3m 정도의 양상이 파악되었다.

[현황]

순천 봉화산성은 산림 조성과 등산로 개설 등으로 훼손이 심하지만, 성벽 윤곽의 일부 건물지 초석 등이 확인되었다. 이와 더불어 소규모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성벽의 축조양상과 건물지의 규모, 출토유물 등을 통한 사용 시기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순천 봉화산성 건물지에서 명문와가 출토되었는데, ‘사평관(沙平官)’, ‘회창오년(會昌五年)’, ‘정해년존(丁亥年存)’, ‘을축(乙丑)’ 등의 명문이 확인되었다. 순천 지역이 백제시대에는 사평군(沙平郡)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는 승평군(昇平郡)으로 개명되었다는 점에서 ‘사평관’ 명문와는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건물지의 절대연대를 비정할 수 있는 연호와 간지가 새겨진 명문와가 확인되었다. 확인된 연호명은 중국 당나라 무종[재위 841~846]의 연호인 ‘회창(會昌)’으로 건물지에서 ‘회창오년(845)’명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845년(문성왕 7) 간지는 ‘을축(乙丑)’으로 ‘을축오월일(乙丑五月日)’명 기와가 확인되며, 두 기와는 동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토기류는 체성(体城)에서 주로 확인되며, 인화문 개편과 장경호편[목긴항아리 조각]이 출토되었다. 이에 건물지는 845년에 조성되었고, 그 뒤 정해년(867 혹은 927)에 개와(蓋瓦)를 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천 봉화산성 성곽의 구조와 특징,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파악되었다. 순천 봉화산성은 인근 지역 통일신라시대 산성으로 알려진 순천 해룡산성, 광양마로산성, 여수호랑산성 등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성곽과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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