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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573
한자 順天朴氏
영어공식명칭 Suncheon Park Clan
영어음역 Suncheon Park Clan
영어공식명칭 Suncheon Park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지 순천박씨 입향지 - 전라남도 순천시
세거|집성지 순천박씨 세거지 -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남가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순천박씨 집성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충청북도 청주시|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성씨 시조 박영규

[정의]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난봉을 중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토착 성씨.

[연원]

순천박씨는 나말여초 순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박영규는 견훤(甄萱)[867~936]의 사위로 후백제 건립에 공을 세웠다가, 견훤의 패퇴 이후 왕건(王建)[877~943]의 편에 섰다. 박영규의 세 딸이 태조와 정종의 후비가 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다. 박영규박영규의 후손은 이후 고려의 중앙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순천 지역의 향리로 활동하였다. 이 때문에 박영규는 사후에 순천 해룡산의 산신으로 신봉되었다.

[입향 경위]

제4차 몽골 침입에 맞서 순천 인제산[지금의 난봉산]에 산성을 쌓고 외침을 막아낸 박난봉(朴蘭鳳)이 출현하면서 다시 세계를 잇게 된다. 박난봉은 벼슬이 정승대광보국숭록대부(政丞大匡輔國崇祿大夫)를 지내고,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또 박난봉의 사후 인제산의 산신으로 신봉되었다. 이를 계기로 박난봉의 후손들은 순천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고, 박난봉을 득관 중시조로 여기고 있다.

박난봉 이후 순천박씨는 순천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몽골 간섭기에는 중앙관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전국적인 수준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고려시대 박영규 이후 사료 상으로 중앙 관직에 진출했다고 여겨지는 최초의 인물은 박숙정(朴淑貞)이다. 박숙정은 순천박씨에서 세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순천박씨는 박숙정을 1세로 하여 대수(代數)를 계산하고 있다. 그리고 손자 대에 벼슬이 다시 이어졌다. 박숙정의 손자인 박천상(朴天祥)은 판개성부사, 증손자 박가흥(朴可興)[1347~1427]은 밀직부사라는 고위관직을 역임했다. 현손 박석명(朴錫命)[1370~1406]도 좌명공신에 책봉되었다.

비슷한 시기 순천박씨에는 박천상-박가흥 계열의 성세에 견줄만한 집이 하나 더 있었다. 박안생-박중림으로 이어지는 가계였다. 박안생(朴安生) 역시 박숙정의 손자였다. 박안생의 둘째 아들인 박중림(朴仲林)[?~1456]은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에 근무하였고, 공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냈다. 거기에 조선시대 문반 관료의 최고 영예인 대제학도 역임하였다. 더욱이 박중림에게는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박팽년(朴彭年)[1417~1456], 박인년(朴引年)[?~1456], 박기년(朴耆年)[?~1456], 박대년(朴大年)[?~1456] 등 네 명의 아들이 문과에 급제하였고, 막내인 박영년(朴永年)[?~1456]도 소과에 급제하였다. 학맥도 대단하였다. 성삼문(成三問)[1418~1456], 하위지(河緯地)[1412~1456] 등이 모두 박중림을 스승으로 섬겼었다.

박천상-박가흥-박석명으로 이어지는 계열과 박안생-박중림-박팽년으로 이어지는 계열은 당대 어느 문중에도 뒤지지 않는 성세를 자랑하였다. 이들은 동고조(同高祖)의 지친(至親)끼리 결속력을 강화하고 조상이 같은 동일한 순천박씨라는 ‘정체성’을 확립해갔다. 이후에도 중종반정을 주도한 박원종(朴元宗)[1467~1510] 등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15세 중엽부터 순천 지역이 아닌 전국 각지로 분파되었다. 한편 순천 지역에 잔류한 파도 임진왜란 이후 타지로 이거해 가면서 순천 지역에 세거하는 순천박씨는 상대적으로 소수가 남게 되었다.

[현황]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조선의 성씨』[『朝鮮の姓』]의 순천군 조에는 순천박씨가 세거하는 마을이 나와 있지 않다. 아마도 수가 그렇게 많지 않고 족세도 크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1961년 순천향교에서 편찬한 『순천씨족보』에는 중종반정의 주역이었던 박원종의 후손이 승주군 해룡면 남가리[현 순천시 해룡면 남가리]에 세거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 충청북도 청주시,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등지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순천박씨는 10만 5208명이며, 그중 572명이 순천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유적]

박영규와 관련이 있는 해룡산성, 박난봉과 관련 있는 난봉산성 등이 발굴되었다. 난봉산에는 박난봉의 묘소가 남아 있다. 이와 함께 1930년 현재의 순천시 조곡동 난봉산 기슭에 시조와 팔대군을 주향으로 모신 숭성전을 건립했다가, 1953년 현재의 순천시 조곡동 죽도봉 산록으로 이건하였다. 정전, 회덕문, 경숭문, 동재와 서재 등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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