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591
한자 李奇男
영어공식명칭 Lee Gi-nam
영어음역 Lee Gi-nam
영어공식명칭 Lee Gi-nam
이칭/별칭 대윤(大胤)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이기남 훈련원판관 제수
출생지 이기남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거주|이주지 이기남 거주지 - 전라남도 순천시
묘소|단소 이기남 묘소 -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마륜리 산 31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광산
대표 관직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훈련원판관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에 참전한 순천 출신의 의병.

[가계]

이기남(李奇男)의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대윤(大胤)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천근(李千根)이고, 아버지는 이사관(李思寬)이다. 할아버지인 이천근이 광주 지역에서 순천 지역으로 이거를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에 세거하였다.

[활동 사항]

이기남은 조선시대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후 관직이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제 이기윤(李奇胤), 이기준(李奇俊)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수영에 자원 종군하여 이순신(李舜臣)[1545~1598] 휘하에 들어가 해전의 승첩에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전공으로 인해 1592년(선조 25)에는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에 제수되었다. 특히 전라좌수군 최초의 거북선 돌격장으로 당포해전, 사천해전에 출전하여 군관 이언량(李彦良)[?~1598]과 함께 적의 선단을 크게 격파하였다. 또한, 임진왜란이 장기화되면서 전라좌수군의 군량이 부족하게 되자 고흥의 도양목장에 둔전을 설치하여 군량 조달에 큰 공을 세웠다.

이기남은 1598년(선조 31) 순천왜교성 공방전이 벌어졌을 때는 종제들과 함께 광양만 해상전투에 참전하여 최후의 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적선을 격파하고 수십 명의 적병을 참살하였을 뿐 아니라 적의 포로가 된 조선의 군사들을 구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묘소]

이기남의 묘소는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마륜리 산 31에 부인 청주한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이기남은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 1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1605년에 이루어진 순천부 유향좌목에 종제 이기윤, 이기준과 함께 입록되었다. 최근 순천 지역에 기거하고 있는 광산이씨 문중에서 순천시 상사면 마륜리 일대에 재실과 광산이씨 사충기적비를 조성하여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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