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592
한자 李奇俊
영어공식명칭 Lee Gi-jun
영어음역 Lee Gi-jun
영어공식명칭 Lee Gi-jun
이칭/별칭 극언(克彦)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03년 - 이기준 무과 급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05년 - 이기준 선무원종 2등공신 책록
출생지 이기준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성격 의병
성별
본관 광산(光山)
대표 경력 만호|첨정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출신의 의병.

[가계]

이기준(李奇俊)의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극언(克彦)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천근(李千根)이고, 아버지는 이사홍(李思弘)이다. 할아버지인 이천근이 광주에서 순천으로 이거를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에 세거하였다.

[활동 사항]

이기준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이기윤(李奇胤), 사촌형 이기남(李奇男)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수영에 자원 종군하였다. 이후 이순신(李舜臣)[1545~1598] 휘하에서 많은 해전에 참전하여 승첩에 있어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이 발발했을 당시에도 형제들이 함께 의병활동을 재개하였다. 『강남악부(江南樂府)』의 「노량전」에 의하면 “무술년[선조 31, 1598] 9월 22일 왜교전투에 참전하여 목숨을 걸고 크게 싸웠으며, 10월 초 하루 야전에서 적선 10여 척을 불태웠다.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는 칼을 휘두르며 적병 10여 명을 무찌른 후 왼쪽 어깨에 총탄을 맞았다. 그러나 의기를 떨쳐 상처를 싸매고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워 적의 목을 베었다.”라고 쓰여 있다. 전란이 끝난 직후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만호와 첨정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이기준은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 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1605년에 이루어진 순천부 유향좌목에 이기윤, 이기남과 함께 입록 되었다. 최근 들어 순천 지역에 기거하고 있는 광산이씨 문중에서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마륜리 일대에 재실과 광산이씨 사충기적비를 조성하여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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