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148
한자 說話
영어공식명칭 Folktale
영어의미역 Folktale
영어공식명칭 Folktal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경엽

[정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신화, 전설, 민담 등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신성 지향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하며, 사실에 근거를 두고 전하는 이야기를 전설이라고 한다. 그리고 흥미 지향의 이야기를 민담이라고 한다. 순천의 설화를 전해주는 문헌으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강남악부(江南樂府)』 등이 있고 『한국구비문학대계』6-4와 「순천지방의 설화」 등에 구전설화가 수록돼 있다. 순천의 설화자료들은 전설과 민담이 대부분이며 특히 전설을 통해 지역적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전설에는 지역성과 역사성이 잘 담겨 있다.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순천과 관련된 경우가 많고, 전설의 증거물도 지역성을 지닌 것들이다. 지명전설과 인물전설을 통해 순천 설화의 특성을 살필 수 있다.

[순천의 지명전설]

지명전설은 지형지물의 유래나 생김새를 설명한다. 대표적인 지명전설은 「삼산의 유래」, 「장자터 전설」, 「수퉁산과 용녀총」, 「억만골과 피내또랑」, 「앵무산 노적가리」 등이 있다.

「삼산의 유래」는 순천의 대표적인 지명전설에 속한다. 전설에 의하면 “어떤 여자 장사가 삼산을 메고 가던 중, 강청마을에 사는 여자가 그것을 보고 깜작 놀라며 ‘여자가 산을 메고 가네.’라고 말하는 바람에 지금의 자리에 산을 놓고 가버려 골 문(門)을 막아 강청에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라고 전한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옛날 이 산은 거신(巨神)이 새끼로 산의 가운데를 두 가닥으로 묶어 어깨에 메고 광양만 해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물을 길러 가는 길에 그것을 보고, ‘산이 걸어온다’라고 외쳤다. 이 여인은 임신 10개월로 해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부정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신은 그만 혀를 차고 이 산을 용당동에 내려놓고 가버렸다.”고 한다. 여장사가 산을 옮겼다는 「삼산의 유래」는 대여신 계열의 전통 속에서 성립된 이야기다. 「삼산의 유래」는 풍수전설과도 접맥되어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특히 일제가 순천에 인물이 못 나오게 하려고 봉우리를 헐었다는 ‘단맥형’ 전설과 연결된 변이형(變異形)은 이 설화가 최근까지도 재창조되면서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자터 전설」은 전국적인 광포전설(廣浦傳說)이다. 「장자터 전설」은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순천시 송광면 낙수마을 지명유래를 전하는 이야기지만, 인간의 과도한 욕심과 악덕은 마땅히 징벌되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주제를 지닌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수퉁산과 용녀총」은 남녀 힘내기 전설이다. 남녀 양항 대립과 힘내기 모티브는 신화적 요소이다. 「수퉁산과 용녀총」은 고대 거인신화의 잔영을 보여주며 여장사 신화의 전설적 변이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용녀총’과 관련된 이야기는 연못의 용이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처녀를 사랑했다는 야래자 전설의 변이형이다. 전설의 증거물인 무덤은 그 규모로 보아 지방호족의 것으로 짐작되는데, 후대에 그 주인이 잊히면서 수구맥이라는 민간신앙적 의미와 결부된 것으로 여겨진다.

「억만골과 피내또랑」임진왜란이라는 역사 체험의 전설적 대응을 보여주는 전설이다. 「억만골과 피내또랑」은 당시 순천 사람들이 겪은 비극의 한 역사를 전해준다.

「앵무산 노적가리」는 전국적 광포전설인 노적봉전설의 변이형이다. 순천시 해룡면 지역의 지형적 사정에 따라 백토물 모티프가 탈락하고 노적바위가 이를 대신하며 성립된 전설이다.

[순천의 인물전설]

인물전설은 역사적 인물이 설화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라 말부터 근세까지 순천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물들이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김총(金摠)은 후백제의 견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사후에 순천의 성황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강남악부』에 의하면, “후백제의 김총은 견훤을 섬겨 관직이 인가별감에 이르렀고, 죽어서는 고을의 성황신이 되었다.”고 한다. 김총에 관한 이야기가 제의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신화적 요소가 담겨 있는 설화라고 할 수 있다.

박영규(朴英規)는 후백제의 견훤(甄萱)과 연결돼 있었고 고려 왕건(王建)과 긴밀했던 인물이다. 『강남악부』에 의하면, “박영규는 강남군의 후손이다. 견훤의 사위였고 이 땅의 군장이었다. 해룡산 아래 홍안동에 웅거하고 있었다. 나중에 고려에 투항하여 좌승의 벼슬을 얻었다. 죽어서 해룡산 산신이 되었고, 순천박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박영규전설」「김총전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인물의 신격화’ 구조로 돼 있다.

‘박난봉’은 사람 이름이자 산 이름이기도 하다. 『강남악부』에 의하면, “박난봉은 특출한 영웅의 자태로서 이곳의 군장이 되어서 인제산에서 마을 뒤편 진산에 이르기까지 성을 축조하고 그곳에 웅거하였다. 죽어서는 인제산의 산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박난봉은 전설에서 영웅적인 인물로 묘사돼 있으며 사후에 인제산신으로 좌정(坐定)[자리 잡아 앉음]했다고 전한다. 박난봉이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불분명하지만, 전설상의 패턴으로 볼 때 전형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조국사전설」은 고승의 설화적 형상화를 보여준다. 『승주군사』에 수록된 자료에 의하면, “옛날 송광사에 도적이 성행하던 무렵의 일이었다. 송광사보조국사가 절 근처에 살던 도둑의 무리를 지금의 주임으로 안주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부 남은 도둑들이 마을로 숨어들어 마을 사람과 행인을 괴롭히므로 마을 사람들이 보조국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보조국사는 고깔을 바위 위에 벗어놓고 도둑골을 건너다보며 곰곰이 생각하였다. 도둑골 주위에 개미를 왕성하게 하자 도둑이 그것에 못 이겨 쫓겨났다고 한다. 지금도 그 도둑골 밑에는 개미가 많아 ‘개미밭’이라고 부르고 보조국사가 벗어놓은 고깔은 고깔바위가 되어 남아 있다.”라고 전한다. 「보조국사전설」에서는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실제 행적보다는 신이한 탄생, 송광사 중창과 관련된 도적 퇴치 등이 거론된다. 그의 비범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임경업(林慶業)에 관한 이야기는 낙안읍성 일대에서 폭넓게 전승된다. 구전설화에 의하면, “임경업 장군과 누나가 내기를 했다. 누나는 베를 한필 짜서 동생의 옷을 한 벌 짓기로 하고, 임경업은 하룻저녁에 성을 다 쌓기로 했다. 누나가 옷고름만 남겨 두고 옷을 만들지 않고 동생에게 승리를 양보했다. 그렇게 해서 임경업 장군이 내기에서 이겼다.”라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임경업이 하룻밤에 도술을 부려 쌓은 성이 낙안읍성이라고 전한다. 설화적 과장을 통해 영웅적 면모를 부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임경업전설」은 오누이장수 전설과도 결부돼 있다. 이로 볼 때 임경업이 민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영웅임을 알 수 있다.

김자점(金自點)은 역적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김자점은 대단한 영웅이 될 수 있었으나 부친의 사소한 실수로 역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화에서 김자점의 부인이 지혜로운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과 대비되는 김자점의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정몽굴은 한말에 활약했던 의병장이라고 전한다. 구전에 의하면 “정몽굴이 힘이 좋고 무섭고 장군감으로 생긴 사람이었다. 정몽굴이 주동이 되어 의병들 몇을 데리고 말을 타고 가는 왜병들을 공격했으며, 나중에 조선인의 밀고로 왜병에게 잡혔다.”라고 전한다. 서사적으로 간략하지만, 정몽굴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 전설을 통해 당시 지역 사람들이 겪은 역사 체험을 의미 있게 기억하고 있다.

[특징]

순천의 지방지라고 할 수 있는 『강남악부』에 순천의 설화자료가 많이 수록돼 있다. 이를 통해 역사적인 인물들의 활동상을 두루 접할 수 있다. 특히 역사적 인물의 신격화 과정을 보여주는 김총, 박영규, 박난봉 등은 지역사에서 중요시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리고 보조국사와 같은 고승 전설과 임경업이나 김자점처럼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물들의 이야기도 널리 전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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