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재의 처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1170
한자 -處士
영어공식명칭 Cheosa of Buljae(Folktale)
영어음역 Cheosa of Buljae(Folktale)
영어공식명칭 Cheosa of Buljae(Folktale)
이칭/별칭 금전산에 서린 삼기,순천 불재 처사 전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0년 - 「불재의 처사」 『순천시의 문화유적』Ⅱ-옛 승주군을 중심으로에 「금전산에 서린 삼기」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 「불재의 처사」 『낙안과 낙안읍성』에 「금전산에 서린 삼기」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1년 4월 29일 - 「불재의 처사」 남도여행길라잡이 누리집에서 「순천 불재 처사 전설」로 수록
관련 지명 금전산|처사굴|처사샘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지도보기
채록지 「불재의 처사」 - 전라남도 순천시
성격 지명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처사|순천군수
모티프 유형 처사와 군수의 대결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에 있는 금전산 불재의 처사굴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불재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전산순천시 별량면 오봉산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사람에 따라 이 고개를 불치, 불재, 불체고개라고 부른다. 불재 인근에는 처사굴, 처사샘, 각시샘, 쌀구멍 등이 있는데 각각의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불재 고개에서 동북쪽으로 금전산 구릉을 타고 1㎞쯤 오르면 해발 500m 지점에 옛날에 처사가 살았다는 처사석굴이 있다.

[채록/수집 상황]

「불재의 처사」는 2000년에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순천시의 문화유적』Ⅱ-옛 승주군을 중심으로 560~563쪽에 「금전산(金錢山)에 서린 삼기(三奇)」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구술자, 채록 시기, 채록 장소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2001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낙안과 낙안읍성』 173~176쪽에도 「금전산(金錢山)에 서린 삼기(三奇)」로 수록되었다. 남도여행길잡이에서 제작한 설화 애니메이션 「순천 불재 처사 전설」이 누리집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내용]

처사가 처사굴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낙안에서 순평[현재 순천]을 가기 위해 군수가 이 고개를 넘게 되었다. 고개에 다다르자 일행은 처사에게 “군수가 지나가고 있으니 인사하라”고 명령하였다. 처사가 들은 체도 하지 않자 사졸들이 잡아다 군수 앞에 대령시켰다. 군수가 처사에게 무엄하다고 호통을 하자 “내가 군수에게 인사할 아무런 의무가 없다. 공부하는 것도 죄가 되냐?”고 반문하였다.

군수는 화가 났지만, 그냥 돌려보냈다. 처사는 돌아가면서 “마침 불이 없으니 온 김에 밥 지을 불씨나 좀 얻어 가겠다.”라고 하면서 불을 청했다. 군수는 처사를 골려주려고, 불씨를 말꼬리로 만든 밀가루 치는 체에다 담아 가도록 했다. 군수는 처사를 뒤따라 가보았는데 아무 탈 없이 체 안에서 숯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굴에 이르자 처사는 숯불이 담긴 체를 군수에게 들고 있으라고 했다. 군수가 그 체를 받아들자 그때까지 아무렇지 않게 담겨온 숯불이 체에 구멍을 내고 땅에 떨어졌다. 군수는 비로소 처사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로부터 이 고개를 ‘불체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불재의 처사」의 주요 모티프는 석굴에서 수학하던 처사와 순천군수의 대결이다. 처사는 굴에 머물렀지만 불을 체에 옮길 수 있을 만큼 신묘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었다. 순천군수는 자신의 높은 신분을 이용해 처사를 억압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게 되었다.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이지만 높은 경지를 이룬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높은 관리라고 할지라도 일반 백성들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화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