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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482
한자 順天臨淸臺
영어공식명칭 Imchoengdae Stele, Suncheon
영어음역 Imchoengdae Stele, Suncheon
영어공식명칭 Imchoengdae Stele, Suncheon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임청대길 18[옥천동 165]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565년연표보기 - 순천임청대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6월 2일연표보기 - 순천임청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순천임청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장처 순천임청대 - 전라남도 순천시 임청대길 18[옥천동 165]지도보기
성격 기념비
재질 석재
크기(높이,길이,너비) 135㎝[높이]|70㎝[너비]
소유자 순천향교
관리자 순천향교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옥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순천 지역으로 유배온 인물들의 교유 기념비.

[형태]

순천임청대는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인해 순천 지역으로 유배된 조위(曺偉)[1454~1503]와 김굉필(金宏弼)[1454~1504]이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어 교유(交遊)하던 곳으로 조위가 ‘항상 마음을 깨끗이 가지라’라는 뜻으로 ‘임청대’라 이름 지었다. 조위는 1498년 순천에 유배 왔고 김굉필은 평안도 희천으로 갔다가 1499년 순천 지역으로 이배(移配)되었다. 1565년(명종 20) 순천부사로 부임한 이정(李禎)[1512~1571]이 그들의 덕을 기리기 위해 임청대비를 세우고 옥천서원(玉川書院)도 건립하였다. 현재 옥천서원 경현문 오른편에 있는데, 원래 동쪽으로 약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을 1971년에 지금 위치로 옮기고 비각을 세운 것이다. 순천임청대는 대석[돌 위에 다시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을 이중으로 하여 하대석은 별 조각이 없고 상대석은 아래를 향한 연꽃잎[覆蓮]을 새긴 받침돌[臺石]에 몸돌[碑身]을 얹은 형태를 갖추고 있다. 순천임청대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비석과 다른 특이한 점이다. 순천임청대의 규모는 높이 135㎝, 너비 70㎝이다.

[특징]

순천임청대의 앞면 글씨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글씨를 썼다. 진사 정소(鄭沼)가 기(記)를 쓰고, 진사 배숙(裵璹)이 감독하였다. 순천임청대는 조선시대 초기 유배 인물들의 교유관계를 알 수 있는 기록유산으로 유배 생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음기(陰記)」의 내용이다.

역문 : 음기(陰記)

연산조(燕山朝) 때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先生)과 매계(梅溪) 조위(曺偉) 판서(判書)께서 함께 승평(昇平)에 있는 서계(西溪)의 언덕에 귀양을 오셔서 돌을 모아 대(臺)를 쌓으셨으니, 이것이 임청대(臨淸臺)이다. 매계(梅溪) 공이 이 대(臺)에 이름을 붙이고 기문(記文)을 지으셨는데, 지금 60여 년이나 되었다. 오늘날 그 기문을 모사(摹寫)하여 돌에 새기고자 하였으나, 돌의 품질이 잘 이지러지는 것이어서 새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단지 ‘臨淸臺(임청대)’ 세 글자만 전면에 새겼으니, 이는 곧 퇴계 이황 선생의 글씨이다. 이 음기를 쓴 사람은 진사(進士) 정소(鄭沼)이고, 이 일을 감독한 사람은 진사 배숙(裵璹)이며, 이 당시의 태수(太守)는 동성(東城)의 후학(後學)인 귀암(龜岩) 이정(李禎)이다. 가정(嘉靖) 44년 을축년(명종 20, 1565년) 8월 일 세움. 석공(石工)은 산인(山人) 조희(租熙)임.[燕山朝寒暄金先生宏弼梅溪/ 曺參判偉俱謪昇平西溪之畔/ 聚石爲臺是曰臨淸梅溪名之/ 而爲記今六十餘年矣擬摹入/ 石石品頑缺不能刻只刻臨淸/ 臺三大字于前面乃退溪李先/ 生滉筆也書此文者進士鄭沼/ 也董是役者進士裵璹也太守/ 則東城後學龜岩李禎也/ 皇明嘉靖四十四年乙丑八月/ 日立/ 石工山人租熙]

[의의와 평가]

순천임청대는 조선시대 유배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고 역사 인물의 행적 기념비로서 의의가 있으며 순천 지역 향촌 사회사에 있어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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