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481
한자 順天八馬碑
영어공식명칭 Palmai Monument, Suncheon
영어음역 Palmai Monument, Suncheon
영어공식명칭 Palmai Monument, Suncheon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 95[영동 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장모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17년연표보기 - 순천팔마비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977년 - 순천팔마비 보호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6월 2일연표보기 - 순천팔마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지정
현 소재지 순천팔마비 -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 95[영동 1]지도보기
원소재지 순천팔마비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지도보기
성격 선정비
관련 인물 최원우
재질
크기(높이,너비,두께) 160㎝[높이]|77.5㎝[너비]|대석 140㎝[가로]|85㎝[세로]|40㎝[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순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영동에 있는 최석의 선정비.

[건립 경위]

순천팔마비는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 최석이 비서랑으로 전직하자 마을 사람들이 관례에 따라 말 8필을 기증하였는데, 최부사가 상경 후 기증받은 말 8필과 그사이 새로 낳은 망아지 1마리를 보태어 9필을 다시 돌려보냈다’라는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근거로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이다. 순천팔마비는 정유재란 때 유실된 후 1617년(광해군 9) 승평부사 이수광(李睟光)이 비좌는 다시 사용하고 비신을 새로 제작하여 성의 남문 연자루 옆에 세웠다. 그 후 순천팔마비는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비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위치]

순천팔마비순천시 영동 우리은행[구 승주군청] 앞 도로변에 있다.

[형태]

순천팔마비[2m]는 장방형의 비좌에 정면과 측면에 큼직한 복련[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무늬]을 조각하고, 그 위에 2단의 호형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상부가 타원형인 비신을 세웠다. 현재 호형의 단은 훼손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비신에는 다시 말각방형의 난을 만들어 ‘팔마비’라는 제(題)를 양각으로 새겼다. 뒷면에는 해서로 음기가 기록되어 있다. 제는 진사 원진해(元振海)가 쓰고, 뒤의 음기는 이수광이 짓고, 동지(同知) 김현성(金玄成)이 썼다.

[금석문]

순천팔마비가 정유재란으로 훼손되자 고을 장로들의 재물 기부에 힘입어 돌을 깎고 다듬어 1617년(광해군 9)에 완성한 것이 이 비문이다. 순천팔마비가 무너져 없어도 사람들에게는 옛 선정을 베푼 사람의 덕이 구전되어 기리게 됨을 말하고, 순천팔마비를 세움으로써 관리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풍속과 기강을 바르게 한다는 좋은 뜻이 있음을 아울러 당부하고 있다.

[현황]

순천팔마비는 1977년 정규하 승주군수의 노력으로 순천 출신 재일교포 김계선의 성금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을 현 위치에 신축해 오늘에 이른다. 순천팔마비 앞에는 문화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화재의 관리는 순천시에서 하고 있다. 순천팔마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천팔마비는 1365년 건립했으나 정유재란으로 인해 훼손되어 1617년 다시 건립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지방관의 선정(善政) 겸 청덕비(淸德碑)의 효시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