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481
한자 順天八馬碑
영어공식명칭 Palmai Monument, Suncheon
영어음역 Palmai Monument, Suncheon
영어공식명칭 Palmai Monument, Suncheon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 95[영동 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장모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17년연표보기 - 순천 팔마비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977년 - 순천 팔마비 보호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6월 2일연표보기 - 순천 팔마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3월 25일연표보기 - 순천 팔마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지정 해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3월 25일연표보기 - 순천 팔마비 보물 제212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순천 팔마비 보물 재지정
현 소재지 순천 팔마비 -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 95[영동 1]지도보기
원소재지 순천 팔마비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지도보기
성격 선정비
관련 인물 최원우
재질
크기(높이,너비,두께) 160㎝[높이]|77.5㎝[너비]|대석 140㎝[가로]|85㎝[세로]|40㎝[높이]
소유자 국유
관리자 순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영동에 있는 최석의 선정비.

[건립 경위]

순천 팔마비는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 최석이 비서랑으로 전직하자 마을 사람들이 관례에 따라 말 8필을 기증하였는데, 최부사가 상경 후 기증받은 말 8필과 그사이 새로 낳은 망아지 1마리를 보태어 9필을 다시 돌려보냈다’라는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근거로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이다. 순천 팔마비는 정유재란 때 유실된 후 1617년(광해군 9) 승평부사 이수광(李睟光)이 비좌는 다시 사용하고 비신을 새로 제작하여 성의 남문 연자루 옆에 세웠다. 그 후 순천 팔마비는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비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위치]

순천 팔마비순천시 영동 우리은행[구 승주군청] 앞 도로변에 있다.

[형태]

순천 팔마비[2m]는 장방형의 비좌에 정면과 측면에 큼직한 복련[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무늬]을 조각하고, 그 위에 2단의 호형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상부가 타원형인 비신을 세웠다. 현재 호형의 단은 훼손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비신에는 다시 말각방형의 난을 만들어 ‘팔마비’라는 제(題)를 양각으로 새겼다. 뒷면에는 해서로 음기가 기록되어 있다. 제는 진사 원진해(元振海)가 쓰고, 뒤의 음기는 이수광이 짓고, 동지(同知) 김현성(金玄成)이 썼다.

[금석문]

순천 팔마비가 정유재란으로 훼손되자 고을 장로들의 재물 기부에 힘입어 돌을 깎고 다듬어 1617년(광해군 9)에 완성한 것이 이 비문이다. 순천 팔마비가 무너져 없어도 사람들에게는 옛 선정을 베푼 사람의 덕이 구전되어 기리게 됨을 말하고, 순천 팔마비를 세움으로써 관리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풍속과 기강을 바르게 한다는 좋은 뜻이 있음을 아울러 당부하고 있다.

[현황]

순천 팔마비는 1977년 정규하 승주군수의 노력으로 순천 출신 재일교포 김계선의 성금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을 현 위치에 신축해 오늘에 이른다. 순천 팔마비 앞에는 문화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화재의 관리는 순천시에서 하고 있다. 순천 팔마비는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3월 25일 보물 제2122호로 승격,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천 팔마비는 1365년 건립했으나 정유재란으로 인해 훼손되어 1617년 다시 건립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지방관의 선정(善政) 겸 청덕비(淸德碑)의 효시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