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847
한자 順天仙巖寺
영어공식명칭 Seonamsa Temple, Suncheon
영어음역 Seonamsa Temple, Suncheon
영어공식명칭 Seonamsa Temple, Suncheon
이칭/별칭 해천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이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147년 - 순천 선암사 중창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2월 21일연표보기 - 순천 선암사 사적 제50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6월 30일연표보기 - 순천 선암사 세계유산 지정
최초 건립지 해천사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
현 소재지 순천 선암사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죽학리 802]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아도화상|도선국사
전화 061-754-5247
홈페이지 순천 선암사(http://www.seonamsa.net)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조계산에 있는 통일신라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역사]

순천 선암사순천 송광사와 함께 고려시대 이후 조계산의 대표적 사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송광사와 함께 30본산에 포함될 정도로 규모 있는 사찰이었다. 해방 이후 비구승과 대처승의 분규로 인해 순천 선암사의 관리를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이 공동으로 하고 있다. 2018년 순천 선암사를 비롯하여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대흥사와 함께 7개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란 명칭으로 1080번째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순천 선암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아도화상(阿道和尙) 창건설과 도선국사(道詵國師) 창건설이 있다. 19세기의 기록인 「조계산선암사사적」에서는 “신라 법흥왕 때의 승려 아도가 일선군[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대]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기도하다가 꿈에 수기[장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를 받고 사찰을 창건하였다. 산 이름을 ‘청량(淸凉)’이라 하고 절의 이름을 ‘해천(海川)’이라 하였다.”라고 하여 아도화상 창건설에 대해 언급하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한 해천사(海川寺)가 지금의 비로암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앞선 18세기 초 기록에서는 “도선이 중국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와 가르침을 펴다가 이곳에 절을 짓고 비보(裨補) 사찰로 삼았다. 우리나라 남쪽에는 삼암(三巖)이 있는데, 영암군 월출산의 용암(龍巖), 광양현 백계산의 운암(雲巖), 승평부 조계산의 선암(仙巖)이다. 도선국사가 이 바위에 모두 탑과 부도를 건립하였다. 따라서 선암사의 경내에도 철불 1위, 보탑 2기, 부도 3기 등을 세웠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18세기 이전까지 선암사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믿어왔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1147년(의종 1)에 제작된 「중창건도기(重創建圖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창건도기」에 따르면, “대법당 2층의 전각은 도선국사가 지은 미륵전이다. 법당 가운데는 석종이 있었던 흔적이 있고, 뜰에는 2기의 보탑(寶塔)이 있으며, 그 뒤에는 3기의 부도와 철불이 있으니 이것이 도선국사가 남긴 유적이다.”라고 하였다. 당시 2층 미륵전을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믿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창건도기」에서 언급한 철불은 현재 각황전에 봉안된 철조여래좌상이고, 보탑은 대웅전 앞에 있는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이며, 부도는 순천 선암사 북 승탑[보물 제1184호]과 순천 선암사 동 승탑[보물 제1185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이 1094년(선종 11)경에 선암사에 머물며 사찰을 중창했다고 한다. 당시 중창 내용이 1147년의 「중창건도기」에 실려 있다. 「중창건도기」에 따르면 선암사의 규모는 법당 13위, 전각 12위, 요사채 26위, 산내 암자가 19곳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각국사 의천선암사에 머물렀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으므로 대각국사 의천이 주석하면서 중창했다기보다 불사의 자금을 지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이후 1660년(현종 1)에 경잠(敬岑)·경준(敬俊)·문정(文正)이 재건했고, 1698~1707년에는 호암당 약휴(若休)가 주석[선종(禪宗)에서 승려가 입산안주(入山安住)하는 일]하면서 선암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전각과 불상 등이 대부분 이때 건립되거나 중수되었다. 1707년(숙종 33) 약휴는 불사를 회향(廻向)[자기가 닦은 공덕을 중생을 향해 돌려 줌]하면서 채팽윤으로부터 「조계산선암사중수비」의 글을 받아 비석을 세웠다. 「조계산선암사중수비」의 음기(陰記)에 의하면 당시 선암사에 상주하는 승려가 250인, 법당(法堂) 8위, 전사(殿舍) 12위, 요사채 16위이며, 산내 암자로 13처가 있고, 부속 암자로 용안산(龍眼山) 선적암(善積庵)과 운동산(雲動山) 도선암(道詵庵)이 있다고 하였다. 1823년(순조 23) 3월 화재로 대웅전, 명부전, 정문루, 향로전 및 요사채 6동이 소실되었다. 이에 1824년(순조24) 해붕(海鵬)·눌암(訥庵)·익종(益宗)이 제6차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전각과 요사채[스님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지어진 건물]를 재건하였다.

[가람 배치]

순천 선암사 공간 구성의 특징은 4개의 영역이 공존하는 다중 구조라는 점이다. 4개 영역은 대웅전 영역[만세루, 심검당, 설선당, 대웅전, 지장전, 응향각], 원통전 영역[원통전, 팔상전, 불조전, 장경각, 노전], 응진당 영역[응진전, 미타전, 진영당, 달마전, 산신각], 각황전 영역[각황전, 무전]이다. 각 영역은 건물들이 ‘ㅡ’자형, ‘ㄴ’자형, ‘ㄷ’자형, ‘ㅁ자형’을 구성하고 있고, 담장 등으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사찰 건축 구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관련 문화재]

순천 선암사[사적 제507호]에 소장된 문화재는 불상 429점, 불화 159점, 석조물 72점, 공예 258점 등 총 2,679여 점이다. 이 가운데 국가문화재가 16점이고, 시도문화재가 11점이다. 국가문화재는 보물이 14점, 천연기념물 1점, 국가민속문화재 1점이다. 시도문화재는 유형문화재 7점, 기념물 1점, 문화재 자료 3점이다.

보물은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순천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 순천 선암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955호],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보물 제1044호], 순천 선암사 대각암 승탑[보물 제1117호], 순천 선암사 북 승탑[보물 제1184호], 순천 선암사 동 승탑[보물 제1185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보물 제1311호], 선암사석가모니불괘불탱 및 부속유물일괄[보물 제1419호], 순천 선암사 선각국사 도선 진영[보물 제1506호], 순천 선암사 서부도암감로왕도[보물 제1553호], 순천 선암사 33조사도[보물 제1554호], 순천 선암사 동종[보물 제1558호], 순천 선암사 동종[보물 제1561호]이다.

국가민속문화재로는 18세기에 대각국사 의천을 위해 제작한 삼보명자수가사(三寶名刺繡袈裟)·쌍룡문직은가사(雙龍紋織銀袈裟) 2점과 중국 명나라의 유물로 전해지는 용문자수탁의(龍紋刺繡卓衣)가 일괄로 선암사 소장 가사·탁의[국가민속문화재 제244호]로 지정되었다. 매화로 유명한 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시도유형문화재에는 선암사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선암사팔상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선암사중수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선암사일주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선암사원통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 순천선암사금동관음보살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순천 선암사 불조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5호]이 있다.

시도기념물에는 선암사삼인당[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이 있다. 문화재자료에는 선암사각황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 순천선암사측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 대각암 올라가는 길가에 있는 선암사마애여래입상[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7호]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