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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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경주정씨는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한다. 지백호는 신라를 구성한 사로(斯盧) 6촌 중의 하나인 자산 진지촌(珍支村)[옛 본피부(本彼部)] 촌장이었다. 고려시대 때 정진후(鄭珍厚)가 문과에 급제하여 병부상서 겸 군기시윤(兵部尙書兼軍器寺尹)을 지내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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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구전을 통해 말로 전승되는 언어예술.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속담, 수수께끼 등을 구비문학이라고 한다. 구비문학에서는 전승 공동체가 공유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공동 전승의 체험이 작용하고, 공동작과 개인작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관계가 펼쳐진다. 구전되지만 지속성을 띠면서 전승된 내력이 여기에 있다. 구비문학은 생활 속에서 전승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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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순천 출신의 무관. 김대인(金大仁)의 본관은 김해(金海), 시호는 충숙(忠肅)이고, 순천부 별량면[현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서 출생하였다. 김대인에 관련된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한 생몰연대와 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6세기를 전후하여 활동하였다. 김대인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에는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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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에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낙안교촌리은행나무는 낙안향교 명륜당 오른쪽에 있으며 높이는 25m, 둘레는 8.2m이다. 원줄기의 2.5m 부위에서 3개의 줄기로 갈라졌다. 낙안향교는 지방의 관학 기관으로서 조선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658년(효종 9)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낙안교촌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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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순천 낙안읍성 내 은행나무와 관련된 영험한 이야기. 「낙안읍성 은행나무」는 2013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 2017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순천시 낙안면,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되어 있다. 낙안읍성 객사 옆에는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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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순천 낙안읍성에 있는 노거수. 낙안읍성노거수는 순천 낙안읍성 내 객사 남쪽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가 28m이며, 주 줄기는 가슴 높이에서 둘레를 쟀을 때 10.2m에 이르고 있다. 객사 뒤편 마당에는 높이 23m에 뿌리목 둘레만 9.4m에 이르는 큰 푸조나무가 있다. 푸조나무의 경우 생장 속도가 비교적 빠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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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전개.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문학은 고전문학과 근현대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전문학은 구비문학, 한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순천 지역의 구비문학으로는 설화, 민요, 판소리가 있다. 순천 지역 설화로는 순천시 용당동의 봉우리 세 개가 이어진 삼산(三山)의 유래,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송광면 낙수리·상사면 미곡리 등에 부자(富者) 흥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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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순천의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유학자와 선비 세력에 대한 호칭. 사림(士林)은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여기에서는 조선 건국 이래 유학을 표방하면서 향촌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재야 선비들을 지칭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순천의 토착 세력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향회 등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외부에서 새로운 세력이 이주해오고, 조위(曺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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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출신의 의병. 성응지(成應祉)[?~1594]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순천 출신이다. 성응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생몰연대 및 자세한 가계는 알 수 없다. 성응지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순천향교의 유생 신분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전라좌수영에 자원 종군하여 이순신(李舜臣)[1545~1598] 수군절도사의 휘하에 들어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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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동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 송천서원(松川書院)은 김일손(金馹孫)[1464~1498], 김대인(金大仁), 김치모(金致慕) 3인의 의리정신과 무공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김일손은 호가 탁영(濯纓)·소미산인(少微山人) 등이고, 정언·이조좌랑·이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김일손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로 김굉필(金宏弼)·정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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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학구리에서 순천시 월등면 계월리 송치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송치재는 『여지도서』에는 송치원(松峙院)으로, 『승평지』에는 송현원(松峴院)으로, 고지도에는 송원(松院)으로 기록된 곳이다. ‘송치원’·‘송원현’·‘송원’을 ‘솔재원’ 또는 ‘솔원’으로 불렀는데 소리가 변하여 ‘솔원재’로 다시 ‘소련재’로 변하였다. 한편, 송치의 산에 민묘(民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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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경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출신 이영민이 창작한 가창가사. 이영민(李榮珉)의 초명은 희수(熙守), 호는 취산(醉山)·벽소(碧笑)이며, 현 순천시 상사면 출신이다. 김광렬에게 수학하였으며, 한학과 서예를 배웠고,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06년 순천에 야학을 개설하여 후학을 교육하였고, 1910년 박승휘와 함께 순천남학당[현 순천남초등학교]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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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왜성.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쌓은 성으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끈 1만 4천여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조명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당시 남해안 26 왜성 중 하나이다. 기록에는 ‘왜교’, ‘예교’, ‘망해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유재란(1597년)때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 선봉장 우키타 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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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포구. 신성포는 조선시대에 작은 어촌마을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신장개(新場開)’로 불렀으나 이후 포구의 기능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성[新城, 왜성(倭城)]이 있는 포구라는 의미의 ‘신성포(新城浦)’로 불렸다고 한다. 1612년(광해군 4) 달성서씨, 전주이씨, 김해김씨, 수원백씨, 밀양박씨, 밀양손씨, 동성이씨 등이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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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에 있는 앵무산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에 있는 앵무산을 ‘양미산(糧米山)’이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막기 위해 앵무산을 마름으로 덮어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보이도록 하여 적을 방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앵무산 전설」은 1985년에 승주군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승주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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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양성이씨는 송나라 출생으로 고려 문종 때 귀화하여 삼중대광보국을 지내고 양성군에 봉해진 이수광(李秀匡)을 시조로 한다. 조선 건국 이후 이옥(李沃)[?~1409]은 자헌대부지중추원사, 판한성부사 등의 벼슬을 내리며 회유해도 끝내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정부에서 이옥의 절개를 기려 정절공(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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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유를 시조로 하고 정소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연일정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간의대부를 지낸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한다. 정종은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연일현백(延日縣伯)에 봉해져서 본관을 연일로 하였다. 중간에 세보의 실전으로 원류는 같지만 소목(昭穆)을 밝힐 수 없는 두 파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고려 예종 때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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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 용안마을에 있는 무한정의 건립에 관한 이야기. 「용안마을 무한정」은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에 「용안마을 무한정」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 장소, 제보자 등은 별도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의 용안(龍眼)마을은 ‘산의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곳인데, 이곳에는 정진사(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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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전해지는 초상화. 순천 지역 유교회화는 순천 동헌재의 「성황신김총영정(城隍神金摠影幀)」1점, 순천 충민사의 「임경업 초상(林慶業肖像)」1점, 순천 충무사의 「이순신 초상(李舜臣肖像)」1점, 개인 소장 「황현 초상(黃玹肖像)」1점 등 모두 4점이 전해진다. 김총은 순천김씨의 시조이자 순천 지역의 성황신으로 모셔졌고,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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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에 참전한 순천 출신의 의병. 이기남(李奇男)의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대윤(大胤)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천근(李千根)이고, 아버지는 이사관(李思寬)이다. 할아버지인 이천근이 광주 지역에서 순천 지역으로 이거를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에 세거하였다. 이기남은 조선시대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후 관직이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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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출신의 의병. 이기준(李奇俊)의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극언(克彦)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천근(李千根)이고, 아버지는 이사홍(李思弘)이다. 할아버지인 이천근이 광주에서 순천으로 이거를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에 세거하였다. 이기준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이기윤(李奇胤), 사촌형 이기남(李奇男)과 함께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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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에 참여한 순천 출신의 의병. 이전(李荃)의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자는 대윤(大胤)이다. 정절공(精節公) 이옥(李沃)[?~1409]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상호군 이양정(李養正)이다. 아버지는 사파진(蛇波鎭) 수군첨제사를 역임한 이윤종(李潤終)[1490~1551]이다. 1569년(선조 2) 광주 지역에서 순천 지역으로 이거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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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 조선 초기에 이루어진 국방체제가 무너져 가고, 남해안 일대 왜구의 침략과 두만강 일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진족의 침입으로 이이(李珥)는 남왜북호(南倭北胡)[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오랑캐]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조정의 갑론을박 속에 군사력 강화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에서는 도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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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서 발원하여 순천의 역사·문화공동체를 형성해온 하천. 하천은 식수원 및 생태 공간, 그리고 생활공간으로서 지역 주민 생활과 지역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천에서 물을 끌어들여 식수와 생활에 사용하거나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하천 자체의 배수 기능에 의해 우수(雨水)와 오폐수를 배출시켜 ‘사람이 살만한 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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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에서 활약한 순천 출신의 무관. 정사준(鄭思竣)[1553~?]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근초(勤初)이며, 호는 성은(城隱)이다. 아버지는 판관 정승복(鄭承復)[1520~1580]이고, 동생은 현감 정사횡(鄭思竑)[1563~1640]이다. 정사준의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며 장인은 현감 홍잠(洪潛)[1524~1589]이다. 순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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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에 참전한 순천 출신의 무관. 정사횡(鄭思竑)[1563~1640]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여인(汝仁)이며, 호는 매헌(梅軒)이다. 아버지는 판관 정승복(鄭承復)[1520~1580]이고, 형은 현감 정사준(鄭思竣)[1553~?]이다. 정사횡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제 및 조카들과 함께 힘을 합하여 의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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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은 순천시는 전라남도 광양시·구례군·곡성군·화순군·보성군·여수시와 접해 있으며, 순천만과 광양만을 품고 있다. 지형과 지세는 대체로 북쪽과 서쪽이 높고 기복이 심하다. 남동쪽에 평야 지대가 분포하고 있을 뿐 시의 대부분은 산악에 둘러싸여 있다. 순천 지역 서쪽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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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은 순천시는 전라남도 광양시·구례군·곡성군·화순군·보성군·여수시와 접해 있으며, 순천만과 광양만을 품고 있다. 지형과 지세는 대체로 북쪽과 서쪽이 높고 기복이 심하다. 남동쪽에 평야 지대가 분포하고 있을 뿐 시의 대부분은 산악에 둘러싸여 있다. 순천 지역 서쪽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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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정운, 송희립을 배향하는 사우. 충무사는 이순신(李舜臣)[1545~1598], 정운(鄭運)[1543~1592], 송희립(宋希立)[1553~1623]을 모시는 사우이다. 제향은 이순신의 탄생일과 귀천일에 모신다. 이순신은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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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忠武祠)와 왜성대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는 충무사(忠武祠), 순천 왜성 이른바 왜성대(倭城臺)가 자리잡고 있다. 왜성대는 일본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1597년(선조 30) 9월 2일 축조하기 시작하여 3개월만인 1597년 12월 2일에 완공한 일본군의 방어 요새다. 고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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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된 양천허씨 사우 충열사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순절한 일심재(一心齋) 허일(許鎰)[1549~1593]을 주벽으로, 허일의 셋째아들 재헌(載軒) 허곤(許坤), 재종제 장암(莊菴) 허경(許鏡)을 배향하고 있다. 허일은 순천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감찰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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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구는 우리말 이름이 ‘합구[수]장아’, ‘학구[수]징이’ 인데 ‘학구정(鶴口亭)’이라고 한자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산세가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국이라 ‘학구(鶴口)’라고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학구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원리·장척리·와요리·개운리·화룡리의 각 일부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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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천 출신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에 참전한 무관. 허일(許鎰)[1549~1593]의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자는 여중(汝重)이며, 호는 일심재(一心齋)이다. 할아버지는 허형(許亨)[1489~1564]이며 아버지는 참판을 역임한 허혼(許渾)이다. 어머니는 옥천조씨이다. 부인은 고령박씨와 광산김씨이다. 허일은 1549년(명종 4)에 태어났고 15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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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당시 순천 왜교성에 주둔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했던 일본군과 조명연합군이 벌였던 왜교성전투의 전개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 전라남도 순천시는 예로부터 관광도시로 사랑을 받고 있다. ‘순천’ 하면 떠오르는 명소가 많다. 천년고찰 순천 송광사, 순천 선암사, 조선의 전통 읍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순천 낙안읍성, 흔들리는 갈대와 황홀한 낙조로 넋을 뺏는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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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당시 순천 왜교성에 주둔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했던 일본군과 조명연합군이 벌였던 왜교성전투의 전개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 전라남도 순천시는 예로부터 관광도시로 사랑을 받고 있다. ‘순천’ 하면 떠오르는 명소가 많다. 천년고찰 순천 송광사, 순천 선암사, 조선의 전통 읍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순천 낙안읍성, 흔들리는 갈대와 황홀한 낙조로 넋을 뺏는 순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