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
-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분파 19세기 후반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회는 ‘장로교연합공의회’를 통해 교계예양협정(敎界禮讓協定)을 체결하여 미국 북장로회는 평안도, 캐나다장로회는 함경도, 호주장로회는 경상남도, 미국 남장로회는 충청도 일부와 전라도를 선교구역으로 선정한다. 이때 미국 남장로회는 순천을 비롯한 남부 지역을 선교지로 정한 후 개신교를 전파하...
-
초기국가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순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순천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소국이 등장한 것은 삼한 시대부터이다. 순천 지역은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중 마한에 속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마한은 흔히 78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서 마한 소국으로 비정되고 있는 곳은 세 곳이었다. 불사분사국(不斯濆邪...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순천의 행정구역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후삼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진정한 통일국가를 건설한 고려는 지방세력까지 통치체제로 포섭할 여력이 없었다. 태조부터 경종 대까지[936-981] 일부 군사적인 거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지방세력의 자치상태에 있었다. 조세 수취를 맡은 금유, 조장,...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옛 옥과현, 현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에 있는 성덕산 관음사가 창건된 유래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관음사와 낙안」은 2001년 순천시와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편찬한 『낙안과 낙안읍성』 189~190쪽에 「성덕(聖德)과 관음사(觀音寺)」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설화 서두에 “관음사사적기(觀音寺事蹟記)에 전하기를”이라고 적어...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부임한 어린 군수가 아전들의 못된 버릇을 고쳤다는 이야기. 「관헌의 버릇을 고친 군수」는 1995년에 순천시에서 편찬한 『낙안읍성』[2015년 보정 12쇄] 216쪽에 「관헌의 버릇을 고친 군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설화 말미에 ‘송영채라는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라고 표기하고 있다. 채록 시기와 장소에 관해서는 별도로 표기되어...
-
전근대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 교육의 역사 순천 지역은 구석기시대 이후 한반도 남부의 중심 고을이었다. 낙안 지역을 포함한 순천 지역에는 마한·가야 유물, 백제계 산성 등 역사 유적, 후백제 김총·박영규의 근거지였던 역사적 사실들이 이를 증명한다. 삼국시대 이후 왕권 강화의 방편으로 유교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시도가 있었겠지만, 순천...
-
1876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근대사회. 1860년대를 기점으로 동학의 발생, 흥선대원군 정권의 개혁, 양요(洋擾)와 제국주의의 침략, 여기에 대항한 반침략 민족운동의 발생은 근대사회의 주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개항은 조선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항 시기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의 수립과 세계자본주의의 침투 등 다양한 모습...
-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전산 서쪽 중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건립된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금둔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자를 알 수 없지만, 금둔사지 출토 유물과 문헌 기록을 통해 창건 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금둔사에는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배후에 있는 산. 옛 이름이 쇠산이었으나 100여 년 전 금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자 뜻풀이는 금으로 된 돈산이나 불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인 오백비구[오백나한] 중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따왔다고 금강암 스님들은 전한다. 금전산은 중생대 백악기 때 관입한 흑운모 화강암을 기반암으로 한다. 주변 지역은...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치리 명칭은 금동마을과 진치마을·대치마을·소치마을에서 유래했다. 금동(琴洞)마을은 선녀들이 샘골에서 목욕한 후 마을 북쪽 300m 지점에 있는 비선등을 오르내리고, 옥녀봉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놀았다고 하여 거문고 금(琴) 자를 따 ‘금동’이라 했다고 한다. 대치(大峙)마을은 제석산 중턱 마을에서 낙안으로 다니던 고개의...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낙민루는 순천 낙안읍성 동헌과 내아(內衙)로 들어가는 외삼문 누각이다. 명칭은 맹자가 “백성과 함께 즐긴다.”라고 한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유래하였다. 1987년 1월 복원 당시 금둔사(金芚寺) 승려 지허(指虛)가 지은 상량문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낙민루의 주소는 순천시 낙안면...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에서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인근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액운을 막고 풍년을 기원한 민속놀이. 낙안 디딜방아 훔쳐오기는 마을 장정들이 주도하였다. 매년 1월 14일이 되면 이들은 먼저 한곳에 모여서 어느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올 것인가를 모의한 후, 해가 지는 저녁 무렵에 지정한 마을의 디딜 방앗간으로 간다. 그...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교촌리에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낙안교촌리은행나무는 낙안향교 명륜당 오른쪽에 있으며 높이는 25m, 둘레는 8.2m이다. 원줄기의 2.5m 부위에서 3개의 줄기로 갈라졌다. 낙안향교는 지방의 관학 기관으로서 조선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658년(효종 9)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낙안교촌리은...
-
고려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낙안군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에 처음 사용되었다. 백제시대에는 분차군(分嵯郡), 신라 경덕왕 때는 분령군(分嶺郡), 고려시대에 처음 낙안군(樂安郡)으로 기록되었다. 고려 전기에 낙안군은 수령이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었다. 995년(성종 14)에는 해양도 소속으로 승주에 설치되었던 연해군...
-
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낙안면 명칭은 고려 때 ‘낙안(樂安)’이라고 불렸으나 그 유래를 찾을 수가 없다. 낙안면은 본래 백제의 분차군(分嵯郡) 또는 분사군(分沙郡)이었는데 통일신라 때 분령군(分嶺郡)으로 개칭하고, 고려 때 낙안 또는 양악(陽岳)으로 칭하였다. 조선시대에 군현의 승강이 있었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낙안군 소속...
-
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는 법정면. 낙안면 명칭은 고려 때 ‘낙안(樂安)’이라고 불렸으나 그 유래를 찾을 수가 없다. 낙안면은 본래 백제의 분차군(分嵯郡) 또는 분사군(分沙郡)이었는데 통일신라 때 분령군(分嶺郡)으로 개칭하고, 고려 때 낙안 또는 양악(陽岳)으로 칭하였다. 조선시대에 군현의 승강이 있었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낙안군 소속...
-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국립자연휴양림. 낙안민속자연휴양림은 자연 생태계를 유지, 보전하면서 임산물과 공공재의 생산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질서 있게 개발하여 국민의 보건 휴양, 정서함양, 산림소유자와 지역주민의 소득향상 및 대국민 산림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목적과 낙안읍성 방문객에게 숙박의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산림청은 2001년...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분지. ‘낙안’ 지명 유래는 낙토민안(樂土民安) 관악민안(官樂民安)이라고 하여 땅이 기름지니 곡식이 많이 생산되어 먹을 것이 넉넉하니, 굶는 백성이 없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백성들 역시 이처럼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잘살고 있으니 송사(訟事)가 있을 리 없고 더불어 관(官) 역시 정치를 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하...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순천 낙안읍성 내 은행나무와 관련된 영험한 이야기. 「낙안읍성 은행나무」는 2013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 2017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순천시 낙안면,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되어 있다. 낙안읍성 객사 옆에는 전라...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 순천 낙안읍성 안에 있는 순천 낙안읍성 홍보관이자 민속자료 전시관. 낙안읍성 자료전시관은 순천 낙안읍성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예전의 낙안면사무소 건물을 활용하여 1997년 4월에 개관하였다 1983년 6월 14일 순천 낙안읍성이 사적 제302호로 지정이 되면서 낙안면사무소 건물이 있던 객사 뒤편을 발굴하게 되었고 낙안면사무...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 순천 낙안읍성 안에 있는 순천 낙안읍성 홍보관이자 민속자료 전시관. 낙안읍성 자료전시관은 순천 낙안읍성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예전의 낙안면사무소 건물을 활용하여 1997년 4월에 개관하였다 1983년 6월 14일 순천 낙안읍성이 사적 제302호로 지정이 되면서 낙안면사무소 건물이 있던 객사 뒤편을 발굴하게 되었고 낙안면사무...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순천 낙안읍성에 있는 노거수. 낙안읍성노거수는 순천 낙안읍성 내 객사 남쪽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가 28m이며, 주 줄기는 가슴 높이에서 둘레를 쟀을 때 10.2m에 이르고 있다. 객사 뒤편 마당에는 높이 23m에 뿌리목 둘레만 9.4m에 이르는 큰 푸조나무가 있다. 푸조나무의 경우 생장 속도가 비교적 빠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크기로...
-
1786년경에 편찬된 전라도 낙안군의 읍지. 『낙안읍지(樂安邑誌)』는 1757~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하여 간행된 읍지이지만 그 내용이 12면으로 매우 소략하여 당시 간략하게 읍지를 소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낙안읍지』는 조선 영조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필사본 『낙안읍지』 1책과 1899년 보성군수 서옥순(徐玉...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평촌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 낙안중앙교회는 순천시 승주읍과 낙안면 지역에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가르치고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낙안 출신 기원근이 돈을 벌기 위해 목포에 갔다가 목포 양동교회에서 선교사 오웬(Clement C.Owen)[1867~1909]을 만나 세례를 받는다. 1908...
-
1894년 전라남도 순천 지역 동학농민혁명군이 전개한 반제반봉건 운동 1893년 5월 보은집회에 동학교도와 농민이 모였는데, 순천의 동학교도 50여 명도 참석했다. 순천의 동학교도는 백산봉기에도 참가했고, 1894년 6월 하순 순창을 거쳐 순천으로 돌아왔다. 이로부터 순천 지역의 동학농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순천 지역은 영호도회소를 중심으로 전라남도 동부 지역 동학농...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에 있는 고려시대 건립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 개운산 동화사는 대각국사 의천(義天)[1055~1101]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사찰에는 1670년(현종 11) 침굉(枕肱) 현변(懸辯)[1616~1684]의 「중수기」, 1724년 환성(喚醒) 지안(志安)[1664~1729]의 「발문」, 1724년 이두채(李斗...
-
백제시대 전라남도 낙안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분차군(分嵯郡)[분사군]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를 살펴보면, 백제시대에는 분차군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분령군(分嶺郡)으로 불렸다. 백제시대 분차군은 현재 전라남도 낙안 지역으로 추정된다. 분차군에는 조조례현(助助禮縣)[현 고흥군 남양면 추정], 동로현(冬老縣)[현 보성군 조성면...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에 있는 고개. 낙안 지역은 제석산·오봉산·백이산·존자산·금화산이 사방을 에워싼 분지이다. 낙안읍성의 동문 밖에서 교촌천을 따라 등교제를 지나 용추(龍楸) 폭포를 거슬러 올라 고개를 넘으면 창녕리가 나온다. 이 고개가 불재이며, 한자로 ‘화현(火峴)’이라 쓴다. 옛날 한 처사가 처사굴[구능수]에서 득도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에 있는 금전산 불재의 처사굴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불재는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전산과 순천시 별량면 오봉산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사람에 따라 이 고개를 불치, 불재, 불체고개라고 부른다. 불재 인근에는 처사굴, 처사샘, 각시샘, 쌀구멍 등이 있는데 각각의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불재 고개에서 동북쪽으로...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읍성으로 석축성이다. 읍성은 치소의 기능과 함께 주민들이 거주하고 유사시 외곽 주민들의 입보처(入保處) 기능을 하였던 곳이다. 순천 낙안읍성도 내부에 행정 군사 시설 등과 함께 민가가 들어서 있다. 조선 전기 유학자인 이석형(李石亨)[1415~1477]의 기문에 따르면 낙안읍성은...
-
1930년경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출신 이영민이 창작한 가창가사. 이영민(李榮珉)의 초명은 희수(熙守), 호는 취산(醉山)·벽소(碧笑)이며, 현 순천시 상사면 출신이다. 김광렬에게 수학하였으며, 한학과 서예를 배웠고,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06년 순천에 야학을 개설하여 후학을 교육하였고, 1910년 박승휘와 함께 순천남학당[현 순천남초등학교] 교원...
-
전라남도 순천시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 조직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의 증진과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된 협동조합. 순천농업협동조합은 농업인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나가기 위해 조직하였다. 농업협동조합은 1961년 7월 29일 「농업협동조합법」에 의거 순천시[승주군 포함] 지역을 포함해 지역별 이동조합을 설치 운영하였다. 농업협동조합...
-
1786년 이후 편찬된 전라도 순천부의 읍지. 『순천부읍지』는 정확한 간행 연도를 알 수 없지만, 내용 분석을 통하여 1876년(고종 13) 이후에 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1618년(광해군 10) 이수광이 간행한 『승평지(昇平志)』에 이어 1729년(영조 5) 홍중징이 간행한 『신증승평지(新增昇平志)』의 내용이 당시의 순천부의 상황을 제대로 번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
전라남도 동남부의 광양만권에 있는 시. 전라남도 순천시는 전라남도 여수시·광양시와 더불어 전라남도 동남부의 광양만권에 속하는 거점도시의 하나이다. 순천시는 동경 127° 10’37”~127° 35’18”, 북위 34° 49’39”~35° 11’08”사이에 동서 간 38㎞, 남북 간 39㎞에 걸쳐 분포한다. 경계를 따르는 둘레 거리는 178㎞에 달하며 해안선의...
-
전라남도 동남부의 광양만권에 있는 시. 전라남도 순천시는 전라남도 여수시·광양시와 더불어 전라남도 동남부의 광양만권에 속하는 거점도시의 하나이다. 순천시는 동경 127° 10’37”~127° 35’18”, 북위 34° 49’39”~35° 11’08”사이에 동서 간 38㎞, 남북 간 39㎞에 걸쳐 분포한다. 경계를 따르는 둘레 거리는 178㎞에 달하며 해안선의...
-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생산된 식자재를 이용한 음식문화. 순천 지역의 식생활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겪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그 시대에 좋다고 인정받았던 것들은 전수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없어지거나 변형되었다. 순천 지역은 1973년에 개통된 호남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 그리고 2011년에 개통된 순천완...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순천 낙안읍성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각. 쌍청루는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0, 낙안군 누정조에는 ‘쌍청루(雙淸樓)’로, 1760년(영조 36)에 편찬한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남문(南門)’으로, 1872년(고종 9) 제작된 낙안군 고지도에는 ‘진남루(鎭南樓)...
-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초곡리에 있는 지경재 고개를 신관 사또가 원귀에게 돈을 주고 넘었다는 이야기. 「여덟냥 고개 이야기」는 전라도 낙안으로 부임해 오던 신관 사또가 험한 지경재를 넘지 못하다가 도사[혹은 원귀]에게 돈 여덟냥을 주고 고개를 쉽게 넘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1995년에 순천시에서 편찬한 『낙안읍성』[2015년 보정 12쇄]에 「여덟냥 고개...
-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역사. 순천 지역에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소국이 나타난 것은 삼한 시대부터이다.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불운국(不雲國), 초리국(楚離國)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남북국시대까지의 순천의 역사 중 특이하고 의미가 있는 것은 임나사현(任那四縣)[사타·모루·상다리·하다리]과 관계이다. 순천 지역이 삼국 중 어느 나라...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일대에서 전해오는 아기장수에 관한 이야기. 「오봉산의 아기장수」는 2013년 한국설화연구소 블로그, 2018년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순천 사람들의 삶에 담긴 이야기 설화』-문헌자료편에 수록되어 있다. 선조 22년(1589), 낙안 어느 마을에 사는 과부가 아이를 가졌다. 과부는 열 달이 흘러도 출산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해괴한 소...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일대의 지형을 옥녀와 결부시킨 전설과 봉룡교의 유래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옥녀산발과 덜컹다리」는 1981년 낙안중학교에서 간행한 『낙안향토지』에 「낙안의 전설」로 수록되어 있다. 구술자, 채록 시기, 채록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2000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순천시의 문화유적』Ⅱ와 2001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한...
-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유교 건축물. 순천시의 유교유산은 향교, 서원, 사우[선조 혹은 선현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 두고 연 수차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 부조묘[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정자, 재사(齋舍)[성균관·사학(四學)·향교 따위에서 유생들의 기숙사로 쓰던 건물], 신도비[임금이나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무덤 동남쪽의 큰길가에...
-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응령리(膺嶺里) 명칭은 마을 뒤의 고개 이름인 ‘매재’를 한자로 뜻 옮김 하여 ‘매 응(膺)’ 자에 ‘재 영(嶺)’ 자를 써서 ‘응령’이라 하였다. 금곡마을은 사금이 나온다고 하여 개칭했고, 서정마을은 순천 원도심의 북정마을·남정마을과 대비되는 ‘서정’의 정자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
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낙안군수를 역임한 문관. 임경업(林慶業)[1594~1646]의 본관은 여흥(驪興), 평택(平澤)이고,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다. 판서 임정(林整)[1356~1413]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임황(林葟)이다. 출생지는 충주 달천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평안도 개천이라는 설도 있다. 임경업은 1618년(광해군 10) 아우인...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순천 낙안읍성 안에 있는 조선시대 낙안군수 임경업의 선정비와 비각 임경업장군비각은 낙안군수를 지낸 임경업(林慶業)[1594~1646]이 이임(移任)한 직후인 1628년(인조 6) 4월에 세운 선정비와 비각이다. 임경업은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1626년(인조 4) 5월에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1628년(인조 6) 3월까지 재임하였다....
-
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에 낙안군수 임경업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경업(林慶業)[1594~1646]은 충주부 달천촌[현 충청북도 충주시 달천동] 출신인데, 1626년(인조 4) 낙안군수로 부임해온 것이 인연이 되어 「임경업전설」이 낙안 일대에 전승되고 있다. 「임경업전설」은 1997년에 순천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순천시사』-문화·예술편에 이...
-
근대 순천 지역에서 낙안군수를 지낸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임병찬(林炳瓚)[1851~1916]은 전라북도 옥구군 서면 상평리 남산[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남산마을]에서 태어났다. 임병찬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임용래(林榕來)와 개성왕씨(開城王氏) 사이에서 출생했는데, 임병찬의 집안은 옥구의 대표적인 향리(鄕吏) 출신이...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 조선 초기에 이루어진 국방체제가 무너져 가고, 남해안 일대 왜구의 침략과 두만강 일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진족의 침입으로 이이(李珥)는 남왜북호(南倭北胡)[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오랑캐]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조정의 갑론을박 속에 군사력 강화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에서는 도요토...
-
전라남도 순천시 주민의 삶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 지리적 환경. 전라남도 순천시는 한반도 남서부에 있는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동서 간 약 38㎞, 남북 간 약 39㎞이며, 순천시의 주변에는 전라남도 광양시·구례군·곡성군·화순군·보성군·여수시가 접해 있다. 남쪽으로는 여수반도를 가운데 두고 동으로는 광양만을, 서로는 순천만을 끼고...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국가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만들어진 읍성. 조선시대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적이나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성곽시설로 읍성의 형태는 고려시대 말기부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면서 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읍성의 설치는 조선 초기에 시행된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읍성의 기능이 상실되고 성곽이 폐기된다...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역사. 조선이 건국되어 1413년(태종 13) 순천부는 순천도호부로 바뀌었다. 그보다 앞서 1396년(태조 5)에는 여수현이 다시 순천부의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여수현과 함께 순천도호부의 관할 지역이었던 돌산현, 부유현 및 다수의 향·소·부곡 등은 15세기 말까지는 모두 직현이 되었다. 1...
-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와 명칭의 변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천 지역의 명칭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삽평군을 시작으로 승주목, 승주연해절도사, 승평군, 순천부, 순천도호부, 순천군이 그것이다. 이러한 명칭 변화가 나타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명칭 변화는 단순히 이름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순천이 지닌...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옛 낙안읍)에서 명당(明堂)에 묘를 쓴 후 왕비가 된 장화왕후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혜산스님과 왕무의 탄생 이야기」는 2001년 순천대학교박물관과 순천시에서 편찬한 『낙안과 낙안읍성』에 「혜산(惠山)스님과 왕무(士武)의 탄생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말미에 손석우가 1993년 쓴 『터』 하에 수록된 「혜산스님과...
-
전라남도 순천시 석현동에 있는 전라남도 동부지역을 가시청권역으로 하는 TV·라디오 지상파 방송국. KBS순천방송국은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공영방송이다. KBS순천방송국은 지역민에게 뉴스, 교양, 오락 프로그램 등을 제작, 방영하여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삶의 활력소를 고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KBS순천방송국은 2004년 KBS여수방송국과...